"그리고 말이에요, 신들에게도 의지해야 하겠지만 사람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있어요. 이 명함에 우리 딸이 개업한 작은 병원 주소가 적혀 있어요. 일단 귀신이 빙의하면 몸을 상하게 되거든요. 우리 딸이 잘 처치해 줄 거예요." <p.243. 밤의 신이 내려온다. - 장자샹 장편소설>
책의 이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어. 달리기를 만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달리기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해. 어떤 사람들에겐 달리기가 신이고 종교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래서 죽어라 매일 달리기도 하고 매일 그렇게 열심히 SNS에 인증도 하는 거겠지. 나도 달리기가 두 발로 쓰는 기도라고 책에 썼듯.
달리기에만 의지하진 말라는 말처럼 들리더라. 신처럼, 달리기에게도 의지해야 하겠지만 사람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있어요.라는 말처럼. 그래서 우린 SNS를 하는 게 아닐까.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토요일에 있을 독서모임 책이야. 리딩하는 분이 고르신 책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수요일쯤 다 읽을 것 같아.
이 책은 대만작가 장자샹이 쓴 책이고, 어린 시절, 고향, 두려움, 알 수 없는 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야. 귀신이야기로 가득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고향, 추억, 기억,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져.
이 부분도 기억에 남아.
"더럽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귀신은 사실 흉악한 귀신이 아니라 손이나 발이 없고 기억이 없는 불쌍한 귀신들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귀신들은 대개 굶어 죽은 귀신이나 쓰레기 귀신, 변소 귀신, 병 걸린 귀신이다."
"이런 귀신을 속이는 건 누구나 가능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야관이 이처럼 외로운 혼귀들을 보호해준다고 한다. 야관은 검은 도포 차림에 검은 비단을 두르고, 손에는 빨간 등롱을 든 야신으로, 외로운 혼귀들이 두려움에 떨면, 야관이 손을 뻗어 혼귀들의 귀를 막아서 모든 무서운 일들을 듣거나 보지 못하게 해준다." <p.230. 밤의 신이 내려온다. - 장자샹>
대만판 저승사자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이 떠올라. 검은 도포 차림에 빨간 등롱을 든 밤의 귀신. 근데 너무 자비로워서 가슴이 따뜻해져. 사실 우린 외로운 혼귀들이 사람들을 무섭게 하고 놀라게 하고 괴롭히는 존재라고 여기는데 이 글은 그들이 외롭고 두려움에 떤다고 말해.
생각해보니. 아주 무시무시한 귀신이 야관이고, 외로운 혼귀들이 귀신 레벨에서 가장 변변치 않고 귀신 구실을 못하고 사는 존재들인데, (사람들을 무섭게 한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혼귀들이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벌벌 떨고 있고 무서운 소리를 듣거나 보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이 새롭더라.
마치 자상한 아빠나 엄마가 아이가 무서운 소리를 듣거나 무서운 장면을 보지 않도록... 그 무시무시한 저승사자(?)인 야관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작고 작은 혼귀들의 귀를 헤드셋처럼 감싸주고 눈을 살포시 크고 따뜻한 손으로 가려주는 장면.
관세음보살이 이승에서 세상의 모든 아픈 소리를 들어주는 존재라면. 이승에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비의 화신이 관세음이니까.
야관은 저승에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존재가 아닐까. 저승에서 세상의 모든 아픈 소리를 들어주는 존재. 저승에서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의 소리를 듣고 어루만지는 어둠의 화신.
오늘 글을 이렇게 마칠까 해.
"그리고 말이에요, 달리기에게도 의지해야 하겠지만 책에도 의지할 필요가 있어요. 이 명함에 누군가 쓴 책 이름이 적혀 있어요. 일단 달리다가 마음을 다치면 오히려 몸을 상하게 되거든요. 이 책이 그 전에 잘 처치해 줄 거예요." <모든 달리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 정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