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장인물 : 승우(러너가 아닌 나), 러너(러너인 나)
- 시간과 공간 : 공원. 저녁 7시 30분~9시, 바나나 러닝클래스
러너 : 오늘 훈련은 지속주래. 평지 2바퀴, 언덕 2바퀴를 반복하는 코스이고 20분은 서서히 속도 올리면서 워밍업. 목표페이스 조별로 나뉘어 40분간 달리는 훈련.
승우 : 난 호흡이 힘든데 오늘 너무 습하다.
러너 : 훈련은 원래 힘들어. 10km 45분 조로 갈까?
승우 : 언덕이라 45분조는 ...
러너 : 더워서 페이스 5분~5분5초로 늦춰주셨으니 해보자.
(불안한 얼굴로 45분 조에 선다. 같은 조에 4명이 있다)
러너 : 워밍업 20분 동안 호흡에 신경 써봐.
승우 : 난 입으로 숨 쉬면 금방 지치고 힘들어.
러너 : 최대한 코호흡을 해봐.
승우 : 그럴까?
(워밍업 20분이 끝나고 지속주 40분이 시작된다)
승우 : 워밍업도 힘들다. 5:05 페이스가 가능할까?
러너 : 일단 조원들 따라서 최대한 뛰어.
승우 : 알았어. 사실 지금도 최대한이야.
(지속주 20분을 버틴다. 코호흡은 유지한다. 점점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이 빨라진다.)
승우 : 계속 이 속도에 맞추려면 입으로 숨 쉬어야 해. 입으로 숨 쉬면서 빠르게 언덕을 뛰면 금방 퍼질 것 같아. 정신력으로 더 버틸 순 없을까?
승우 : 글쎄. 버티다가 결국 중간에 다 놓게 될 것 같아.
러너 : 40분간 계속 달리는 게 중요하니 네가 결정해.
승우 : 응. 앞의 분들 보내고 내가 지금 달릴 수 있는 속도로 계속 달려볼게.
(지속주 25분 후 조에서 나와 혼자 달리기 시작한다)
러너 : 지금 페이스는 5:10-5:15 정도야. 괜찮아?
승우 : 응. 이 속도로는 계속 달릴 수 있어.
러너 : 호흡은 어때?
승우 : 코호흡 계속하고 있어. 코로 숨 쉴 수 있는 속도가 내가 장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속도야. 지금처럼!
러너 : 조에서 나와 혼자 달려서 속상하진 않아?
승우 : 난 꺾여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 더 좋아.
사실 사람들은 남들이 꺾였는지 안 꺾였는지 몰라. 항상 탓하고 나무라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지. 습한 날씨에도 40분간 달릴 수 있는 체력이 있어서 좋아. 코치님이 집이랑 회사 근처에 러닝클래스를 열어 주신 것도. 안 아프고 달릴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 함께 달릴 동료가 있는 것도.
러너 : 호흡은?
승우 : 입호흡이 뭔가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면 코호흡은 장기간 조금 낮은 성과를 계속 낼 수 있는 방법 같아. 지속주처럼.
러너 : 어떤 삶이 좋아?
승우 : 코호흡 같은 삶이 좋아. 조금 느려도
내게 맞는 속도로 오래 달리고 싶어.
러너 : 훈련 땐 조금 힘들어야 해.
승우 : 힘들었지만 40분간 최선을 다했다는 게 좋아.
러너 : 어제 너 인별에서 누군가의 글 캡처하더라.
승우 :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라. 이 세상의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
러너 : 그 말이 왜 좋아?
승우 : 누군가에게 달리기를 해보라거나, 러닝클래스가 좋으니까 나가보라거나, 책을 써보라거나, 더 도전하라고 말하는 것 모두 자기 기준이야.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가진 게 '유리한 입장'에서 나온 거라면? 물론 노력도 하겠지. 하지만 지금 내가 달릴 수 있는 것도, 직장, 건강, 돈, 시간, 환경. 모든 것이 '유리'해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러너 : 달리기에 비유한다면?
승우 : 달리기는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운동이야.
나에게 빠른 페이스가 누군가에겐 조깅이고,
그에게 빠른 페이스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조깅이야. 속도는 절대적이고 상대적이지.
달려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누군가에겐 유리한 입장에서 건네는 말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난 나에게 이 말로 용기를 주고 싶어.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비난하고 싶을 땐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해. 지금 내가 그
사람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