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를 쏘다

by 러너인

버거킹에 왔다.
앞뒤로 마주 보는 2인용 의자. 그 우측 자리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총 세 명. 세 분이 서로 손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뭘까? 아. 수화구나. 서로 손을 보면서 이야기해야 해서 3자 대면 스타일로 앉아서 대화 나누는 분들.

우리가 과연 수화처럼 온전히 상대의 말에 집중할 수가 있을까. 서로의 눈과 손모양에 눈을 맞추는 장면에 눈을 맞춘다. 누구도 대화 중에 휴대폰을 보는 사람은 없다. 서로를 위한 100%의 집중과 공감. 언어를 뛰어넘는 완전함. 불완전한 동작으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의사소통.

온몸으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 온몸으로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 패스트푸드처럼 쉽고 빠른 가게 안에서 그림 그리듯 손으로 그려내는 그들의 대화.

슬로우토킹. 빠른 게 선이고 빨라져야 한다고, 빠르게 달리는 법을 찾고 애쓰고 애쓰는 우리. 너무 빨라지면 못 보고 지나치는 게 있어서일까. 한쪽에선 여전히 빠름을 숭배하고 다른 쪽에선 슬로우 러닝이 주목받는다.

세 명의 대화는 춤처럼 화려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동작. 마치 달리면서 팔을 돌리는(권장할 자세는 아니다) 화려한 손기술을 선보이는 러너들처럼. 무협영화에서 마주 본 고수들이 본인의 기술을 선보이기 전 자세를 잡고 준비하는 손놀림처럼 진지하다.

말과 글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아야 읽히고 팔리는 시대에 손동작만으로 전하는 진심. 말이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듯, 수화도 그럴까. 손동작이 빠르면 더 빨리 말하게 될까? 눈썰미가 좋으면 더 잘 듣게 될까?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이나 글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밤새 쓴 손편지보다 AI가 써준 글이 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숏폼의 전성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은 스레드 앱 사람들은 혹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들이 아닌 지하세계에 숨어 사는 비밀결사대 같은 사람들일까?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듯 무예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들.

언젠가 기사에서 본 마약 던지기처럼 글과 책을 은밀하게 유통하는 점조직. 신기하게 달리는 사람만 달리고, 책 읽는 사람만 책 읽고, 책 사는 사람만 책을 산다.

달리는 사람들이 더 달리고(좀 작작 달려도 건강한데), 책 읽는 사람들이 더 책을 산다.(좀 작작 읽어도 충분한데) 나는 아직 그 정도 마니아가 아니다. 달리기를 배우지만 배울 뿐이고, 책을 읽지만 읽을 뿐이고, 글을 쓰지만 쓸 뿐이다.

수화처럼 눈에 보이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읽다가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핸드폰에 눈이 가지 못하게 하는 글. 당신과 글로 수화처럼 대화하고 싶다.

나의 화려한 자음과 모음의 기술에 당신이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지만 적당히 화려하고 그 손동작 속에 진짜가 숨겨져 있기를. 그렇지 않으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잔뜩 폼을 잡고 정신없이 화려한 손동작을 선보이던 어느 무술고수가 상대가 대뜸 꺼내어 쏜 총 한 발에 비명횡사하는 그 장면이 될 테니.

나는 수화처럼 쓰고 싶다. 당신의 지갑을 쏘는 맛집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미친듯 빨리가는 햄버거 시대를 한 방에 꿰뚫는 한 발의 총알 같은 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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