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에 나를 그리다
오후 9시, 기온 27도, 습도 85%.
문득, 2025년 여름 동해의 더위 속에서 달린 끝에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았던 기억이 스쳤다. 혈뇨를 시작으로, 온몸을 찢는 듯한 근육통. 노랗게 변해버린 하늘. 다시 달리기까지 참고 또 참았던 지루한 기다림. 달리기로 인해 간과 신장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링거를 맞으며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겠노라, 지키지 못할 다짐을 했다.
며칠 전 한여름 낮,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서 객기를 부린 탓에 몸이 좋지 않았다. 휴식을 통해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 했다. 하지만 달리고 싶다는 욕심에 마음은 자꾸 그 사실을 잊으라 한다. 그래서 타협을 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는 보강 운동과 수영을 했다. 그렇게 천천히 어둠이 내리길 기다렸다.
밤의 조호바루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을 태울 듯한 태양도, 꼬리를 물던 차량 통행도, 바삐 움직이던 사람도 모두 자취를 감췄다. 낮 동안 쏟아졌던 열기가 아스팔트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거리를 덮고 있었다. 비는 멈췄지만 공기는 여전히 축축했다. 습기를 유난히 불편해하는 나로서는 신발을 신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물 먹은 솜이불처럼 온몸이 무겁고 눅눅했다.
러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아트 런(GPS Art Running)'. 달린 경로를 지도에 남겨 그림을 그리는, 러너가 러닝을 기록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한국에는 붕어빵 런, 댕댕 런, 고래 런처럼 귀엽고 기발한 아트 런이 많다. 아트 런의 핵심은 기록이 아니다. 속도와 거리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길을 헤매며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놀이다.
당연히 조호바루에도 이런 코스가 있다. 약 6킬로미터를 달리면 지도 위에 '러너' 형상이 완성된다. 복잡하지 않은 골목과 직선도로가 적절히 섞여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다. 코스를 따라 달리는 내내, 고요한 공기 속에서 내 발소리와 숨소리만이 리듬을 만들었다. 교차로 앞에서는 한 박자 쉬었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기꺼이 멈춰 숨을 고르기도 했다.
머리를 지나 손을 그리고, 다리를 완성하며 뛰는 내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목적지를 향해 쏟아붓는 훈련이나 대회와는 다르게 아트 런에는 여백이 있다. 낮 동안 쌓였던 잡념들이 땀방울과 함께 툭, 툭 떨어져 나갔다. 이내 거친 숨도 도로 위에 흩어졌다. 축축했던 공기가 땀과 섞이며 비릿한 냄새로 바뀔 즈음, 잠시 멈춰 서서 지도를 확인했다. 지도 위에는 달리는 '러너'가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짧은 다리에 긴 팔과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었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러너. 서두르지 않고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러너. 놀이처럼 달릴 줄 아는 러너. 하지만 언젠가부터 숫자를 향해 달리기만 했다. 몇 번의 부상을 겪고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그런 점에서 지도 위에 남아있는 '러너'의 모습은, 지금의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뒤에야 가능했던 러닝이었다. 사람하나를 그리고 나서야,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놀이처럼 달린 나 자신을, 지도 위에 조용히 새기며.
Runner's Tip
에듀시티 스포츠 콤플렉스(Educity Sports Complex)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자연스럽게 '러너 아트런'을 즐길 수 있다. 학교와 호스텔이 밀집한 지역이라 야간에도 비교적 안전하고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호흡을 유지하기 좋다. 현재 육상 트랙은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수영장, 풋살, 농구, 배드민턴 등 다양한 운동 시설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 크로스 트레이닝 장소로는 충분하다.
러닝을 마친 뒤에는 도보 5분 거리에 에코 갤러리아(Eco Galleria)로 발걸음을 옮겨도 좋다. 카페와 펍,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모여 있어 운동 전후 동선이 깔끔하다.
또, 딤섬을 좋아한다면 멀지 않은 곳에 티안 신 로우(Tian Xin Lou)가 있다. 차를 마시며 여러 종류의 딤섬을 나눠 먹을 수 있으며, 가격 대비 맛도 훌륭해 만족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