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성장 동력을 잃었다.

양적 측면에서의 문제 해결 한계

by 도망

스타트업/중소/중견 기업이 성장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위기가 없다. 노년층, 중 장년층은 단순 반복, 대체 가능한 일자리에서 생활해 왔으나 그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그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최소한의 생계비는 그 누구도 보전할 수 없다.


젊은 층의 상황은 어떤가? 다양한 일자리,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먹고사는 삶에 허덕이는 선배세대의 모습을 직시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아니야, 너희는 달라. 다른 삶을 살 수 있어‘라고 당근을 줘 봤자 그들은 그것이 진정한 당근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체감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바라는 욕구가 생길 수 있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애국심’의 이름으로, 구멍 난 연금의 재원을 메우기 위한 필요성으로 인해 강요되어질 수 없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잉여생산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본인이 느끼기에 충분한 ‘잉여’가 존재하지 않을 때, 새로운 생명 잉태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출산/저출생이 도대체 왜 사회적 문제인가? 이를 문제로 정의하는 것은 누구이며, 애초에 문제를 정의했다면 해결 또한 가능할 것 아닌가? 이를 사회문제로 정의하는 것은 결국 멋모르는 젊은 계층의 건강한 노동력윽 이용하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은 유동성이 낮으나, 단발적인 거래에 10년 이상의 투자가치를 돌려받는 특성이 있르며, 저출산/저출생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마치 부동산의 거대한 버블을 이전세대에게 떠 넘김으로써 안전하게 탈출하려는 작태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산을 가진자는 임차인에 의존하고, 임차인은 다시 젊은 계층의 코 묻은 돈에 의존해 먹고사는 상채에서 이 구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문제시

하는 것은 사회를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에 갇힌 것이다.


전 세계의 산업은 더 이상의 재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전 세계의 소비자도 더 이상의 재화를 원하지 않는다. 이미 생활에 필요한 대다수의 재화는 널리 퍼져있으며 일부 고급재화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을 뿐, 재화에서 중/저가의 위치를 차지하는 시장은 넘쳐나는 공급과 부족한 수요의 해법을 저출산/저출생에서 기웃거리며 찾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신성장동력의 해답을 머릿수, 쪽수 문제에서 찾는 것은 전 세계의 맥락/콘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증빙이기도 하다. 인구가 늘면 한국이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하나? 준비되지 않은 인구의 무분별한 증대는 사회적 돌봄 비용의 낭비만 가져올 뿐 국가의 건전한 수지개선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한다.


산업성장, 활력의 문제를 저출생/저출산에 떠 넘겨서 ‘너희가 새로운 멋좀 해 봐라’는 식의 접근은 어떤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과연 한국의 비대한 공조직에서 생산성 있는 일자리, 산업을 개척하기 위한 성과가 얼마나 나오는가? 제기를 꿈꾸며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국민들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이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나?


공공분야의 크기를 줄이고 아껴서 새로운 성장분야에 투자하고 그 과정에서의 실패를 몇 번이고 받아낼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한국은 성장을 말할 수 있다. 새로움이 없는 성장은 결국 고착이며, 인플레에 머무를 뿐이다. 극단적인 새로운 도전, 우리가 그간 해보지 않은 분야의 장려, 비교 열위에 있어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되어 미뤄뒀던 영역이 다시 떠오르는 성장의 영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마땅히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야 하고, 결국 그러지 못한 자는 사회적

고립/지탄의 대상이 이미 되어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재교육, 사회진출, 기여유도는 국가의 유일한 개입이 필요한 지점이다. 복지를 말하은 자들은 복지의 이름을 빌려 ‘나이 들고 게을러가는 것의 당연함’을 전제로 여러 논리를 설파한다. 한국은

더욱 나이 들고 게을러 갈 것인데, 그 인구 모두가 ‘나이 들었으니 이제 좀 이해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퍼진다면 한국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런 당연시되는 관념이 청년으로 하여금 국가에 애한 긍정적 기대를 품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다음 세대로 계속 전가해 나가는가? 각자의 세대에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지금 대한민국의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내수에 의존할 수 없다. 이미 국민들은 해외재화와 서비스의 다양성/질/가성비에 젖어들었는데 개성 없이 모방해서 높은 임차료와 인테리어비, 재료비 만을 전가하는 식의 자영업이 판을 치면서 장사가 안되니 나라가 우리를 도와줘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누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영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게를 빌리고, 가맹계약을 맺어 저렴한 원가로 음식을 때와서 마진을 붙여 밀어내는 식의 사업만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직 우리가 지닌 한계다.


각자만의 새로움,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결국 소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 장사, 기업은 오래갈 수 없다. 그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소설 수준의 저잣거리가 아니라, 납득가능하며 증빙/검증 가능해야 한다. 그간 한국은 이야기를 꽤나 만들어 온 듯 하지만, 증빙/검증에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기술력/자금력/경쟁력 모두를 갖추고 약간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만을 갖추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당당해지지 못해 보인다.


결국, 실력이다. 실력이 없는 국민, 조직, 국가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실력은 어디서 오는가? 개방과 경쟁이다. 보호와 방어아래서 자라난 실력은 금세 경쟁력을 잃고 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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