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취준, 앞으로는?

송충이는 풀잎먹고 살수밖에 없는가

by runaway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고 글만 쓰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정말정말 쉽지가 않았다.

비록 여의도에서 근무했지만 최저시급에 가까운 돈을 받았기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았고

최대한 식비를 아껴가며 점심식대만 제공되는 회사밥을 저녁까지 먹고 온적도 있고

'주말은 하루만 쉬면 되지'하는 생각에 주말 하루는 물류센터에 가서 돈을 벌어왔었다.

그렇게 1년 남짓의 시간을 살아왔다기 보다 겨우겨우 버텨왔던것 같다.

도대체 이런 생활이 언제쯤 나아질까, 서울에서 나고자란 옆부서 형은 나보다 나이가 한살만 많은데 벌써

수중에 5천만원 이상의 돈을 모았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그동안 내 경제관념이 잘못되었었나, 그치만 옷한벌 안사입고 잘 버티고 있는데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표정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회사에 대한 정, 나아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마음까지 식어만 갔다.


풀타임으로 청소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삶을 잠깐 꿈꿔봤다.

가끔은 밀리기도 하고, 어떤 글을 쭉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드문드문 드는것 보다 오히려 글을 쓰는것 자체에 집중할 여력이 더 많이 생기고 그것이 내 삶을 좀더 풍부하고, 내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해줄수 있으며 청소자체를 좋아하는 내가 보다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청소회사의 정규직 제의를 거절하고, 다시 여의도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대학교 수업 과목들을 다시 공부하고, 좀더 깊이 공부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서 차근차근 또다시 공부를 해 나가고 있다.

왠진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마치 짱구내 가족같이 쥐꼬리 만한 월급을 받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가정이 있는 삶에 대한 갈망도 들었고, 자식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보다 많은 돈을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고 금융공기업과 청소일을 비교했을때 금융공기업을 가야하는 선택지만이 남게 되었다.

청소일을 하는 나에게 부모님의 시선도 탐탁치 않았다.

자식이 남이 먹고간 음식물을 치우고 창문을 닦고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일을 하는게 부모님 입장에서 썩 달갑지 많은 않게 느껴지는게 이해는 가지만,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가려고 노력하던 자식이 왜 그런 일을 하고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리 깊지 않았고 나 또한 글을 쓰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부모님 앞에서 쉽게 꺼내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청소일은 종합예술에 가깝다고 본다. 빠른시간 안에 깨끗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철저한 계획하에 허튼 움직임이 없이 이뤄져야 하고 너무 꼼꼼해도, 너무 대충해도 안되는 그 어딘가의 특이점을 찾아나가면서 하는 일이기에 나는 몸을 쓰는 일이 왜 하찮은 취급을 받는지 잘은 모르겠다. 대다수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의미없는 보고서, 어쩌면 AI가 훨씬 잘 작성할지도 모르는 기안/품의/기획을 고민하면서 많은 돈을 받는데 퀄리티 있는 육체노동을 장기간 해 낼 수 있는 근로자가 시장에서 더 드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고 한다면 행정사무의 대부분이 자동화 된 미래에는 정말 극 소수의 사무직 노동자만이 존재하고 대부분은 육체노동을 하게될지도 모르는 시대가 오지않을까? 그때를 대비해서 젊은 나이부터 청소를 하는 경력을 쌓아놓는 내가 미래에 잘 살아나갈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도 해 보았다.


청소, 참 멋진 일이다. 복잡한 마음과 머리를 비워내는데 아주 탁월하다. 누군가가 힘든 상황이나 고민에 빠진다면 청소를 추천해 주고싶을 만큼 나는 청소라는 행위가 참 좋다. 어쩌면 다음 브런치 글의 주제는 '청소'를 바탕으로 쭉 써내려가 보는것도 좋을듯 하다.


나와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고 도움을 주고 받은 오랜 친구는 금융공기업을 가기위해 다시 준비하는 내 선택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 성향을 보았을때 들어가서 몇년간 회사생활을 한 뒤 어쩌면 다시 청소하고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 보였다. 그 시간이 왔을때 지금이 글을 되돌아 보면 친구의 말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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