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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자 Nov 06. 2024

힘들게 들어갔지만, 점심시간에 사표쓴 썰

제가 잘못했습니다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서 들어간 회사를 제발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배운다는 이름으로,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을 쏟아부으며 일했고 

회사에 있는 동안은 오직 일에 대한 생각과 고민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사직서를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이 윗직급 부터 하나 둘 퇴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직원까지 나가고 났을때

그 부서의 업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나에게 돌아왔다.

해보지 않은 업무, 알지못하는 히스토리를 파악하기 위해 기존의 업무를 넘어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혼자 이것저것 찾아보고 시도해 가며 문제 없이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준비했었다.

타 부서의 업무는 우리팀의 부서장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나에게 뚜렷한 지시와 방향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런 부분까지 크게 괘념치는 않았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라면, 직급/나이/성별 여하를 막론하고 돈을 받고 하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더 공부해서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고, 다른 부서에 약간의 업무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이 한번 생겼다.

나름대로 수습을 한다고 정리해 두고 문제가 없길 바랬고, 솔직하게 말해도 한소리 듣고 수습해도 한소리 들으면 수습해두고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수를 써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감사팀에 불려가서 지적을 받고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한 해명아닌 해명을 했다.

아이러니 했던 부분은, 그들조차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은 나의 잘못에 대해 질책하는 점이였다. 하나의 실수로 회사에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가져온것도 아니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것도 아닌데 그저 타 부서에서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이유로 오전부터 불려가는 일이 썩 즐겁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잘못한 일이기에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만, 해당 업무를 전적으로 떠안고 연습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를 질책받는 상황에서 회사에 대한 미련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밥맛도, 점심값도 쓰고싶지 않은 마음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했다.

사직서 양식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기도, 당장에 퇴사했을때 지금 가진 돈으로 얼마나 생활할 수 있을지,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나가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얘기하는 부분 등등을 생각했지만 이미 사직서는 내손에 들려있었고 더 이상 출근하고싶은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요즘 친구들은 회사를 아르바이트 다니듯 생각해.'라는 대표님의 말은 퇴사에 대한 마음을 한번더 확고히했다. 왜 사직서를 제출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상황파악에 대한 의지조차 없이 그저 사직서를 내고 나가는 직원 하나쯤이야 더 뽑고 최저시급에서 약간 더 쳐주면 그만이라는 대표의 마인드가 엿보이는 말투에서 아, 내가 왜 좀더 빨리 나가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나올때 눈에 밟혔던 딱 한가지는 본인의 확고한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부서장님이였다. 문득 대학시절 내가 생각하는 방향의 일을 누군가가 하고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져보인다고 생각하고 많이 의지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상황, 환경에서 언젠가 마주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본인의 과오나 실수가 있었는지까지 점검하는 모습에서 '저분도 참으로 열심히 생활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첫 여의도 진출기는 김빠진 콜라나 평양냉면 국물맛처럼 약간은 밍숭맹숭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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