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퇴사 후에는 좀 쉬고싶은 마음, 앞으로 생활에 대한 막막함이 느껴졌다.
괜히 퇴사했나는 생각은 한두달이 지난 시점에는 그닥 들지 않았던듯 하다.
퇴사소식을 알린건 친한 친구 한두명, 부모님에게는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
진득하게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는 나에대한 실망감을 안겨드리기도 싫었고
다른 형제때문에 고민이 많으신데 나까지 고민을 안겨드리기는 더욱 싫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퇴사하고 가장 먼저 만난 문제는 생활비, 특히 월세였다.
고향이였다면 뷰가 있는 투룸을 구할 수 있는 돈으로 나가는 월세지출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닐때도 틈틈히 하던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일단 나가면서 생활을 하다가,
진득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겠다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해 숙소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럭저럭 밥값과 생활비를 충당해나갔다.
퇴사를 해서 많아진 시간에는 늦잠을 자기도, 서울 곳곳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브런치를 쓰는 일을 했다.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시간을 활용해서 여기저기 구경다닐수 있는 자유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나에게 타국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안겨주곤 했다.
비싼 월세를 아낌없이 누릴 수 있는 장점중 하나는 여의도 한강변과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였다.
점심을 먹고 졸리는 시간이 되면 햇살이 좋은날 여의도 가장자리를 따라 쭉 달리기를 했다.
직장인의 시간선상에서는 늘 북적였던 여의도가 삶의 시간이 조금 변동된 사실 하나로 한적한 강변을 가진 섬처럼 느껴지는것에 큰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잔잔한 만족감과 행복도 얻었다.
특히, 63빌딩 아래쪽에 도착하면 넓은 잔디 공터가 나오는데 햇살이 좋은날 아무런 사람이 없는 그 잔디밭을 걸으면 사그락거리는 풀소리와 잔잔한 바람에 복잡한 생각과 마음이 쉽게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만약 내가 나이가 많아 가족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온전히 나 하나만을 먹여살리면 되기에 나와 타협만 한다면 충분히 퇴사후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참을성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것인가 하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기도,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나갈때 퇴사에 대한 이유를 보기좋게 포장해 이야기 해야하는 불편함도 생겼다.
퇴사후 하는 청소일은 참 좋다. 손님이 쓰고나간 방을 청소하는 일인데 힘들여 머리를 쓰기보다 조금의 꼼꼼함과 세심함, 민첩성만 요구될뿐 내가 크게 책임을 지거나 고민을 안고가야하는 문제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급여수준은 여의도에서 근무할때와 다름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꽤나 만족스러운 상황이였다.
어지럽혀진 방의 쓰레기를 치우고, 환기시키고, 이곳저곳을 닦거나 쓰는 행위는 힘들기보다 정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내 마음도 정리가 되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퇴사를 하고나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도 생긴것도 좋다. 한 유명 소설가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우연히 야구장에 갔다가 야구공이 하늘높이 올라가는것을 보며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 다짐했다는 항목처럼,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던 나도 회사를 그만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글을 쓰는 행위가 어질러진 생각을 흩트려 놓는 약간의 해소감, 자유로움을 나에게 안겨준다. 특히, 글을 쓰는 시간은 참 빨리가는게 느껴지는데 회사에서의 시간도 이렇게 빨리갔다면 좀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를 다니면서 글을 써도 좋지않았을까? 에 대한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정신적인 노동을 하루종일 하고 나서 글을 쓰기위한 정신적인 에너지가 전혀 남아있지도, 글을 써야겠다는 사소한 욕구가 일지도 않았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나서는 종종 날씨가 좋으면 좋은데로, 무슨일이 있으면 있는데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이 금방 올라왔고 지금도 그런 마음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