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객실의 욕실에서 배운 시간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그 방이 어떤 사람이 묵었는지를 안다.
신발을 벗어두는 방식, 짐을 놓아두는 위치, 베개가 눌린 깊이.
심지어는 욕실의 타올이 어떻게 물을 먹었는지로도 말이다.
한옥을 개조한 호텔의 객실 청소는 그렇게 시작된다.
들어가서 5초.
그 5초 사이에 나는 어제 묵었던 사람의 하루를 읽는다.
욕실 문을 열면 먼저 습기가 나온다.
밤새 에어컨을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옥의 욕실은 여전히 습도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
마치 그 습기 속에 어제의 시간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욕실 거울을 닦을 때면 항상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거울 앞에서 30초를 묵묵히 서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자기 얼굴을 피하듯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거울 위의 이슬을 닦아낼 때, 나는 그 사람의 숨결을 지운다.
한옥의 목재 욕실 벽에는 물이 스며든다.
흙 냄새가 난다.
정확히는 흙이 물을 먹었을 때의 그 냄새인데, 그것은 비가 내린 다음 날 흙내음과는 다르다.
더 깊고, 더 오래된 무언가가 깨어나는 냄새다.
욕조에 남겨진 물때들.
그것들은 층을 이룬다.
지난주 손님, 지난달 손님, 처음 이 욕조가 설치되던 날부터의 물때들이 포개져 있다.
나는 그것들을 한 장씩 벗겨낸다.
마치 책장에서 낡은 책을 꺼내듯이.
어떤 손님들은 욕실을 매우 정성껏 사용한다.
목욕 후 물기를 닦고, 타올을 개어 놓고, 심지어 욕실 바닥까지 깔끔하게 정리해간다.
그런 방에 들어가면 나는 약간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미 깨끗한 것을 더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욕실은 사람들이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난장판이 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떨어진 머리카락들.
손톱깎이로 깎은 발톱들.
욕실 바닥에 흩어진 물과 비누 거품의 흔적들.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청소란 결국 사람들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라는 것을.
어느 날 아침이었다.
욕실 타일 사이에 누군가가 떨어뜨린 팔찌를 발견했다.
은색의 작은 팔찌였다.
분명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이었을 거다.
나는 그것을 주인에게 반납했다.
감사 이메일이 왔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팔찌는 어머니가 주신 것이었어요.'
그 메일을 읽을 때, 나는 내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봤다.
나는 욕실을 청소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추억을 지켜내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옥 욕실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환기다.
현대식 욕실처럼 강력한 환풍기가 없다.
대신 창이 있다.
오래된 창.
마치 그 창이 100년을 보고만 있던 것처럼 흐릿하다.
여름이 되면 그 창을 통해 습기가 역류해온다.
나는 매일 그 창틀을 닦는다.
물기를 짜내며,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곰팡이는 한 번 피면 목재 깊숙이 들어가버린다.
그 검은 자국은 아무리 닦아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수건의 얼룩처럼.
어느 청소 선배는 나에게 말했다.
"욕실 청소는 절대 '완료'가 없어. 항상 '진행 중'일 뿐이야."
그 말이 처음엔 우울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그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 계속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뜻이었다.
누군가는 계속 그 욕실을 사용할 것이고, 계속 습기를 남길 것이고, 나는 그것을 계속 정리해나갈 것이다.
한옥의 욕실은 소리도 다르다.
현대식 욕실의 반사음이 아니라, 목재와 황토가 흡수하는 음향이다.
물 떨어지는 소리도, 타올을 짜는 소리도, 내가 닦는 솔질 소리도 모두 그 공간에 흡수된다.
마치 시간이 흡수되듯이.
욕실 청소를 끝내고 나올 때, 나는 항상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밤새 묵었던 사람의 숨, 습기, 시간이 빠져나가도록.
그리고 새로운 손님을 위한 공기로 채워질 수 있도록.
욕실은 누군가의 가장 취약한 시간이 흘러가는 곳이다.
옷을 벗고, 거울을 마주하고, 자신과 만나는 공간.
그곳을 청소한다는 것은,
남겨진 흔적들을 정성스럽게 지우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의 그 시간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