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화원의 첫 번째 편지- 오만함에 대하여

by 양혜정

정원에게 전하는 첫 번째 편지 - 오만함에 대하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정원에게,


어제는 여름의 태양답게 햇살이 따갑더니, 오늘은 구름 뒤에 숨은 햇살과 다소 습한 물기운이 맨살 위로 스며들어 온다. 더위를 식혀 줄 여름비가 내리려나 반가운 마음에 베란다 창을 더 활짝 열었단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너의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아침을 맞지 않은 너를 바라보았지. 일찍 하루를 시작하면 좋을텐데 싶은 마음에 잠시 속상함이 밀려왔어. 그러다 어제 늦게 잠든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내려놓고, 혹시 예민한 네가 깰까싶어 아주 조용히 문을 닫았단다. 물론 넌 나의 부산함에 잠시 깨어났을 수도 있어. 그럼 나는 또 미안해지지.


학교를 졸업한 뒤, 짧은 계약직 경험을 끝으로 원하는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너의 마음이 요즘 얼마나 복잡할까 생각해본다. 형편이 어려운 엄마를 배려하며, 미안함을 한가득 품고서 너만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너는 밤을 새며 책을 보고 새벽에 잠이 들지. 애써 웃다가도 그늘이 생기는 네 얼굴을 잠깐씩 마주할 때 엄마는 너에게 무얼 해 줄까 고민을 해. 그러다 든 생각이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잔소리를 담은 이야기로 비칠까 다소 걱정스럽지만 진심은 잘 전달되지 않을까하는 믿음을 가져본단다.


첫번째인 오늘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한 문장을 빌려 너에게 이야기해볼게.

“내가 보기에 오만은 가장 흔한 결함이야. 오만이란 사실 아주 일반적이고,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쉬우며,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가운데 거의 없다고 봐야 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지만 서로 달라. 허영심이 없으면서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이고, 허영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느냐의 문제거든.”


이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 엄마의 가슴은 쿵 내려앉았단다. ‘오만함’이라는 단어가 내가 오래도록 회피해 온 잘못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기 때문이야. 60대를 향해가는 지금, 나는 종종 내 삶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되묻곤 해.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뼈속 깊이 다가오더구나.


일찍 사회에 나가 또래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며 살았던 젊은 날의 나는, 그 상황이 당연히 지속될 거라 여겼어. 이른 결혼과 출산,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네 아빠와의 생활 속에서, 나는 돈을 잘 벌었고,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 정말 열심히 벌고, 열심히 썼단다. 주변 어른들이 ‘돈 잘 버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셨지만, 젊은 나는 그 말들을 흘려버렸어.


그러다 나는 점점 더 바빠지고, 네 아빠는 점점 한가해졌어. 그 한가함 속에서 그가 엉뚱한 길로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사실 나는 더 단호하게 말렸어야 했어.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돈은 계속 벌면 되지’, ‘해볼때까지 해보면 싫증나서 알아서 관두겠지’ 하는 마음이 컸어. 지금 생각하면, 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 판단이었는지.


혹시 너도 그런 순간이 있었니? 모든 것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속으로는 뭔가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기분. 그럴 때 스스로를 너무 믿는 건 아닐까, 혹은 경계심을 내려놓은 건 아닐까, 그런 물음을 나도 이제야 자주 던지게 되었단다.


정원아,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자기 본성 중 하나가 ‘오만함’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 ‘나는 잘 될 거야’, ‘나는 잘 할 수 있어’라는 자기 확신과는 다르게, 오만은 ‘나는 잘 났어. 나는 좀 우월해’라는 무의식에서 자주 나온단다. 누구와 비교해서 가지는 마음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게 되는 오만함은 삶에 대해 다소 건방진 태도를 가지게 만든단다. 메리가 말한 것처럼,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야. 그 차이를 네가 알고 있으면 좋겠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그것을 깨달았다면, 지금 너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삶의 환경도 달라졌을지 몰라. 그래서 너는 자신의 오만함을 늘 경계하길 바란다. 우리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자주 물어야 해. 그 물음 속에서 나의 오만함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해.

엄마는 그것을 늦게 깨달아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가까운 사람마저 잃는 아픔을 겪었단다. 너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전해. 그리고 사실은, 이 글은 너에게만 쓰는 게 아니라, 아직도 내 안의 오만과 매일 싸우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쓰는 중이란다. 내 안의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깨닫고 반성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무너뜨리는 나의 오만함을 경계하기 위해 너에게 글을 쓰며 채찍질하는 중이야. 나이가 들면 연륜이 쌓여서 나의 단점들이 다스려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보기 싫은 내 모습이 너에게 이런 글을 쓰게 하는구나. 나도 더 애써볼게.

다음에는 좀 더 기분 좋은 편지를 쓰려고 노력해 볼게. 기대해도 좋아.

오늘도 너의 길을 가기 위해 공부 중인 딸을 응원하며.



사랑을 담아,

엄마가


작가의 이전글부모가 읽어야 아이가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