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화원 네 번째 편지- 제인 에어가 내게 말해 준 것

by 양혜정

정원에게

여름 햇살이 이른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토요일 아침이야.

너는 친구와의 약속으로 모처럼 예쁘게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만 걸쳤을 뿐인데, 너의 젊음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단다.

엄마가 이런 말을 하면 넌 늘 이렇게 말하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하잖아요"

그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지.

그래, 엄마도 그런 고슴도치 엄마야.


오늘은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

그 여성이 누구냐고? 바로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에어] 속 주인공 제인이란다.


그 시절의 나는 입시 스트레스와 사춘기의

여러 혼란스러운 감정들로

마음이 어지럽던 아이였어.

여자아이치고는 키가 크고, 발도 크고, 손도 크고,

어깨도 넓고, 무엇보다 새치가 섞인 머리를 가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부끄러웠단다.


버스를 타면 나만 우뚝 솟아있는 것 같았고

배구부 선생님은 엄마만 보면 운동하자고

손을 끌곤 하셨어.

그 모든 게 나는 싫었단다.

'이대로면 날 좋아해 줄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생각에 일기장에 매일 푸념들을 적어 내려 가던

나날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국어 선생님께서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셨어.

그게 바로 '제인에어'라는 세계 명작 소설이었단다.


나는 그 책을 단숨에 읽으며 빠져들었어.

예쁘지 않지만, 지적이고 독립적인 여자.

여성이 자립적인 삶을 살기에 힘든 사회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간 사람.

사랑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제인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지.

특히 사랑하는 로체스터 곁을 떠나야만 했던 순간,

제인이 말한 이 문장은 그때의 엄마를,

그리고 지금의 엄마를 계속 붙잡아주고 있어.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거야.

고독하고, 벗도 없고, 의지할 데가 없을수록

더욱더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조용히 멈춰 섰어.

나는 왜,

내 신체 조건을 그렇게 원망만 했을까.

왜 나를 이렇게 싫어하며 함부로 대하고 있었을까.

외모에만 매달려 자신을 깎아내리던 내가

참 어리석고 안타깝게 느껴졌단다.

제인의 말은 나의 기준을 바꿔 놓았어.

내 삶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태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먼저 존중하는 태도,

그게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지.



지금의 나는 외모에 대해 한탄하거나

나의 외적인 모습에 삶의 기준을 두지는 않아.

많은 시간을 지나왔고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어.

하지만 종종 지나온 그 시절을 돌아볼 때면

그 고민의 시간들조차 나를 만든 조각들이었구나 싶단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면

이 말을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져.


외롭고 힘들고 흔들릴수록

더욱 너 자신을 소중히 여기렴.

누구보다 먼저,

너를 아끼고 존중해 주렴.

누군가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너 스스로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란다.


엄마도 여전히 삶의 절망적인 순간에서

때로는 무너지고 주저앉지만

그 문장 하나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곤 해.


정원아

오늘 이 편지는 엄마가 제인에어의 말을 빌려

너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야.

그리고 언젠가 너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나를 존중해.

어떤 상황에서도 나답게 살아갈 거야"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너를 생각하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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