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라쇼몬>을 읽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라쇼몬>은 총 14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었고, 이 중 '라쇼몬'과 '덤불 속'을 합쳐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에게 <라쇼몬>은 겉으로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잘 표현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읽으며 인상 깊었던 단편 몇 개를 꼽아 느낀 바를 적어보았다.
첫 번째 단편인 <코>를 읽고 떠오른 것은 '결핍'이었다. 우리는 대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거나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열망한다. 작품 속 큰 스님은 일반적인 코를 갖고 싶어 사람들의 코만 보다 결국 자신의 코를 작게 만든다. 큰 스님은 그토록 열망하던 작은 코를 갖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웃음이 자신의 코 때문으로 인한 비웃음으로 생각하고 예민해진다. 그리고 결국 원래 크기로 돌아온 코에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큰 스님이 외적으로 원하던 모습을 가졌지만, 결코 큰 스님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보인다. 정말 큰 스님의 결핍이 채워졌다면, 누가 웃는 거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 스님은 다른 사람의 반응만을 집중하며 본인이 정작 원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비슷하게 나 또한 신발이 갖고 싶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쳐다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원하던 신발이 생기고, 그 신발을 신으면 정말 내가 스스로 잘 어울리고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몇 주간의 고민 끝에 신발을 갖게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고작 신발에 오랜 시간을 썼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꼈다. 큰 스님의 작은 코, 나의 신발처럼 그토록 원했던 물질적 결핍은 채웠지만 실은 큰 스님과 나 모두 심리적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고 본다.
부족하다 느끼는 결핍이 단순히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 작품이었다.
두 번째 단편 <마죽>의 주인공 사무라이 오위는 신년회 때 조금씩 먹을 수 있는 마죽에 대해 집착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죽을 실컷 먹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오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마죽을 먹게 되었다. 오위의 기쁨은 잠시였고 너무 빨리 마죽을 먹고 싶지 않다는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결국 오위는 마죽을 조금밖에 먹지 못한 뒤 공허함을 느낀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그 목표를 이루었을 때에는 기쁨을 느끼지만, 목표를 상실했다는 점에 공허함을 느낀다. 앞서 <코>에서 결핍이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것처럼 목표 또한 물질적인 것이라면, 달성 후에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인생의 목표를 물질로 설정하는 것보다 자존감, 가치관 같이 내가 갖고 싶은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마죽> 속 인상 깊은 구절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헤이안 시대 교토에는 재난이 닥치고 성문 라쇼몬에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시체들이 버려진 곳이었다. 고용주에게 쫓겨난 하인은 라쇼문에서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는 노파를 만나게 된다. 하인이 왜 머리카락을 뽑냐 물으니 노파는 시체의 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사기를 치다 죽게 되었고, 노파 또한 생계를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들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하인은 노파의 옷을 빼앗고 자신 또한 살기 위해 하는 거라며 사라져 버린다.
<라쇼몬>에 등장하는 시체 - 노파 - 하인 순으로 목숨, 머리카락, 옷을 빼앗기게 되고, 뺏게 된다. 모두 생계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화한다. 무엇이 맞는 걸까? 옳지 않은 행동이라 말하기엔 당장 굶어 죽게 생겼고, 옳다고 하기엔 정의롭지 않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하인 역시 누군가에게 같은 명목으로 가진 것을 빼앗겼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다면 결국 빼앗기거나 빼앗길까 봐 불안해지는 것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도시코는 폐렴으로 아이를 잃고 남편과 여관에 오게 된다. 옆방에 갓난아이와 엄마가 있었다. 두 엄마는 갓난아이를 보며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 슬픔을 나눈다. 그리고 여관을 떠난 후 도시코는 편지를 받는데, 여관에서 본 엄마 또한 아이를 잃게 되었다고 적힌 편지였다. 그 편지를 본 도시코는 안타까워하면서도 기뻐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작품이 <엄마>라고 생각한다. 남의 불행을 나의 다행 또는 기쁨으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겉으로 쉽게 드러낼 수 없지만, 누구나 그런 감정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 또한 최근에 이러한 감정을 느끼면서 나 자신이 추악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죄책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씁쓸하면서도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엄마> 속 인상 깊은 구절
""죽은 것이 기뻐요. 안됐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기쁘다고요. 기뻐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여보." 도시코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격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사내는 와이셔츠 어깨와 조끼를, 이제는 가득 비치기 시작한 눈부신 햇살로 도금하면서 그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앞을 턱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대신이 천재적인 화가에게 지옥변을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본 것만을 그리던 화가는 지옥변을 그리기 위해 제자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한다. 화가는 지옥변 완성을 위해 여인이 타있는 마차에 불이 붙은 모습을 대신에게 실제로 보여달라 요청하고, 대신은 자신을 거부했던 화가의 딸을 태우고 불태워 버린다. 딸을 끔찍이 사랑하던 화가는 자신의 딸이 불타는 모습을 본 뒤, 지옥변을 완성하고 자살해버린다.
<지옥변> 속 화가와 대신은 모두 지위를 이용해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가한다. 그저 지옥변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는 제자에게, 대신은 화가에게. 글로 읽는 거지만, 생각보다 자세히 적혀있어 그 모습들을 상상하게 해 읽는 내내 기가 빨리고 힘겨웠다.
같이 책을 읽은 독서모임에서 화가가 마지막에 딸을 보고도 뛰어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던 것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눴다. 어느 분은 딸이 자신에게 돌아오길 바랬지만, 그럴 수 없으니 차라리 죽음이 났다는 생각에 멈춰있다고도 했고, 애초에 화가가 지옥변을 그릴 때부터 의도한 게 아닐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딸을 마차에 태운 대신에게서 자신이 제자들에게 해왔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되고, 해탈하여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화가가 자살로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와 남편이 길을 가다 도적을 만나 덤불 속에서 남편은 살해당하게 된다. 그 후 관련된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증언하지만, 모두 다 다른 사실을 이야기한다. 도적은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 하고, 아내도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고 고백한다. 무당의 입을 빌려 말하는 죽은 남편 또한 자살한 거라 말한다. 덤불 속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덤불 속으로 다시 빠지게 된다.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개인의 주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우리는 어떠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르다. 그리고 서로 해석하는 차이에 의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흔히 갈등을 겪을 때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곤 하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개인의 주관적 차이로 완전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각 개인이 가진 주관에 대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범죄에 적용되지 않는 그저 개인의 주관에 대해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듯하다.
평소의 나라면 일본 고전소설을 읽어볼 시도조차 없었을 텐데, 독서모임을 통해 <라쇼몬>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라쇼몬>을 읽는 내내 진도가 나가지 않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독서모임에서 한 작품씩 자신의 해석을 공유하고, 같이 의견을 나누다 보니 책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혼자서 읽은 <라쇼몬>은 그저 어렵고 지루한 책이었으나 같이 읽고 얘기한 <라쇼몬>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