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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기력한 이유가 나와 같다면

이연 에세이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을 읽고

by 마레몽

퇴사를 하고나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를 다닐땐 "퇴사하면 ~해야지 ~가야지"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나는 회사를 다녔을 때처럼 똑같이 미루고 있다.


그동안 나는 호기심이 많다는 핑계를 둘러대고, 이거 저거 여러개 건드려보다 1년 넘게 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회사도 마찬가지였지. 그 중 내가 유일하게 1년 넘게 오래했던 취미는 그림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게 재밌었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직업을 동경해왔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너무나 부러워했다.


그리고 지금 의도치않게 퇴사를 한 김에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물론 시작한 지 겨우 2달이 되었고, 직접 그림을 기획하고 그려서 제출한건 고작 3개가 전부다. 그럼에도 연이은 '탈락'과 '미승인'을 마주하니 호기롭게 도전하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무기력한 나만이 남아있다. 매일 늦게 일어나 핸드폰으로 봤던 게시글을 또 보고, 시간을 죽이고 있다. "내일이면 달라지겠지"하며 잠을 자도 결국엔 늦잠을 자고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없던 힘을 끌어내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 이연님의 영상을 보거나 그가 쓴 책을 열어본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왜 무기력한지, 왜이리 불안한지 이유를 알려준다.



p.67

"뭐든 잘하기 전엔 재미가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분명 흥미로 시작하겠지만 점점 높아지는 안목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당신의 손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주변에 잘 그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득하여 걷기도 전에 기진맥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잘해야 즐거워진다. 그림이 정말로 지루하고 재미없을 가능성보다 당신이 아직 즐거울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스스로의 어설픔과 창피를 견디며 멋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 훌륭한 아티스트들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흙길이 모든 예술가가 똑같이 걸어온 길임을 기억하라."


p.165

"모두들 스스로를 정의할 때 하나를 택하여 구분짓지는 않았으면 한다. 물론 둘 중 하나에 선호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생각 외로 당신이 둘 다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기분’ 때문에 시도도 하지 않고 도망치지 말길 바란다. 당신이 당장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지금은 그럴 수 있어도 그게 평생 그럴까?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똑같다. 아직 서툴 뿐이지 영영 못 할 일들은 별로 없다. 그러니 일단 마음을 열어두고 생각하자.


p.174

"나는 저렇게 그릴 수 없을 거야. 작가가 될 만한 사람들은 따로 있어. 나는 특별하지 않아. 연습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정말 그럴까? 의심하면서 계속 그림을 그려보길 바란다. 정말 그런지, 당신의 눈으로 한 번 확인해봐야 한다. (중략) 이것만큼은 오해와 이해의 잣대에서 벗어나 그대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당신은 뭐든 할 수 있다. 이 작은 사실만 알아도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삶에 큰 힘이 된다."


p.211

"그림에 겁이 나는 경우는 조금 나이를 먹었을 때, 혹은 그림이 전공이나 본업이 되었을 때 주로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때는 기대치도 있고 스스로 보는 눈도 많이 자란 상태라서 더욱 그렇다. 그림이 무섭다는 건, 간단하게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다. (중략) 뭐든 욕심이 나면, 내 손이 내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는 게 실망스럽고 싫어진다.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를 아예 안 하려고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자신의 기대를 외면하는 것이다."




맞다. 나는 처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거워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표현하고, 내 손에서 그림이 완성되는 것에 자신감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에게는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난 자신감이 낮아지고, 통과되지 못하는 내 그림들을 보며 난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림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나는 내 '기분'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손이 '기분'을 이겨야하는데, 손은 보이지 않는 '기분'에 짓눌려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기분'을 즐기고 있는건 아닌지 의문이다.


사실 그림으로 직업을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이전에도 주어졌었다. 그때 내가 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실력과 상관없이 그림에 대한 열정이었다. 나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인정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작품이 하나 하나 완성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취미에서 직업으로 도전하는 때가 되니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주변의 눈이 무서워졌고, 내 그림을 내놓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돈과 사회를 핑계로 도망쳤다.


그러나 다시 나는 또 그림 앞에 와있다. 결국, 나는 그림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에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다시 주어진 기회에 고작 '기대'와 '기분' 때문에 포기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기대치를 너무 높은 것같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에 좌절감을 크게 느끼는 것같다. 무기력한 감정과 기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를 인정하고 변화하도록 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예전처럼 완성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는 것. 이것이야 말로 '기분'을 이겨낼 수 있는 발버둥이 아닐까.


잘해야 즐거워진다. 잘하려면? 도망치는게 아니라 매일 해야한다. 나는 그림과 매일 마주하며 친해야져야 한다.


p.63

그림은 당신이 배신했다고 가차 없이 떠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나 손 안에 있으며 이따금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내 인생은 아직까지 모든게 미완 투성이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나의 꿈과 동경만은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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