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을 믿으시지 말입니다.
봄이 오나 싶더니 다시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꽃샘추위가 서성인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스쳐갈 뿐이리라.
곧 살랑살랑 봄바람이 코 끝에 밀려올 것이니, 맴도는 추위도 사랑할 일이다.
그 새 3월이 되었다.
봄이 다가오니, 나도 새롭게 무엇을 해 볼까 생각하다 아침 업무 시작 전에 <10분 독서>를 하기로 했다.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을 모른 척 접어 두고, 책을 펼쳐 보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말이다.
아주 행복한 십 분 간의 리딩 타임!
어제 읽다 만 책을 펼쳐본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익은 단어가 확 들어온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아, 너무나 반갑다.
십 대던가 이십 대던가! 그 언젠가 처음 보았을 때 덜컥, 반했던 단어다.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은 순간순간 생겨났다 사라지거나 변화하니 항상불변(恒常不變)이란 것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는 법!
눈 앞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항상 변화하는데, 사람들은 항상 그대로 있기를 바라니 거기에서부터 모순이 발생해 우리에게 고(苦)가 있게 된다는 불교 교리 중 하나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알듯 모를 듯한 이 심오한 단어에 굉장 매료되었었다. 뭔가 대단한 진리가 담긴 느낌이어서, 괜스레 나도 그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변해야만 한다는 생각. 그래서 어제와 다른 나 자신을 만들고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을 읽으며 끄적끄적 메모도 하고 잡다구리 책들을 끼고 도서관을 자주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나고 보니, 나름 그 홀로 방황했던 시간들이 그럭저럭 괜찮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작가는 대입에 실패를 하고 나서부터 첫 직장을 얻기까지 약 십여 년 동안 철저히 혼자가 됨으로써, 스스로를 냉정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목표한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혼자 있는 것을 불안해한다>거나, <혼자 있는 것의 긍정적 의미>를 알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책이 아닌가 싶다.
'사이토 다카시'는 적극적으로 혼자(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작가는 '단독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으며,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끼는 고독감을 엄청난 에너지로 바꿀 수 있으니 유념하라 한다.
내 경우, 가장 <단독자>로서 충실한 시절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침부터 도서관 문을 닫는 그 시간까지, 밥 먹던 시간을 제외하고 몰입 공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단독자'로서 홀로 앉아 차곡차곡 책 속의 지식들을 머릿속에 저장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묘미가 있었으며, 공부를 마친 후 도서관 문을 나설 때의 뿌듯함 또한 나쁘지 않았다.
'사이토 다카시'도, 학습에 있어서 최고의 마음가짐은 스스로 단독자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며, 친구와 떨어져 자기 자신과 일대일로 마주할 때 배움의 힘이 가장 커진다고 말한다. 나도 분명 그 시절이 '단독자'로 충실히 내공을 쌓던 시기였던 것 같다. 오늘날 이렇게 직장을 다니며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작가는 또한, 스스로에게 기대는 힘인 <자기력>이 있는 사람들이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 잘 지낼 수 있다고 알려준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서 수준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이러한 <자기력>은 젊을수록 '나는 이대로 끝날 사람이 아니야' 또는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라는 생각이 강하고, 자기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고독을 잘 견딘다고 한다.
문득 이십대 때, 삶의 지표처럼 즐겨 써 두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평범을 거부한다. '
지금 생각하면 오만함 그 자체이다. 그러나, 이제 이 책을 읽고 보니 <자기력 끝판왕>이 바로 나다.
예전의 나는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묻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평범한 그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작가 또한 나처럼 평범에 대한 고민을 하며 젊은 시절을 살았다 하니 참 반갑다.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단독자는 담합으로 자신의 입찰 가격을 낮게 책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높은 기대치에 대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단독자로서 <자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젊음'이라 말한다.
과거의 나와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똑같아 보여도 삼단 발사 로켓처럼 과거의 나를 분리하면서,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 젊음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거울은 보면서도 정작 내면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체크할 때 강인한 내면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은 '내면을 파고드는 드릴'과 같아,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알려준다.
그 외에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불안이나 공허감 같은 것은, 지하수맥과 같은 고전에 의지해 솔메이트를 찾는 기분으로 독서를 하면서 극복하길 권장한다.
고독의 시간을 독서로 채우는 것. 그 깊은 의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마지막으로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사람은 사랑할 때 가장 외롭고 고독하다"
사랑이 주는 외로움과 사랑 이후에 남는 더 짙은 고독은 누구나 한 번 쯤 경험한 일 일것이다.
사랑은 우리에게 풍부한 감성을 안겨주며, 일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이 '감정의 세계"가 있어야 비로소 삶이 성립된다고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단순히 일하고 '생산'에만 몰두하는 것은 인생의 본질이 아니란다.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나 또한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듯 하다. 그런 일상 속에서 외로움, 고독이 밀려오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때로는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대면하고,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깊은 세계"에 침잠하는 것은 즐거운 탐험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주 만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한 순간도 한 모양으로 머무를 수 없는 나는, 어제와 또 다르길, 어제보다 한층 더 성숙해지길 꿈꾸면서 계속 앞으로 전진 중이다.
때로는 과거를 더듬다 후회에 젖어 눈물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나의 미래에 불안하여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지금 하는 선택이 옳은 것인지 가슴이 팔랑거릴 때도 많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나' 라는 존재를 부정할 수 없기에 툭툭 털며 또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다만, 작가의 말대로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믿으면서, 홀로 있는 시간을 좀 더 갖고 고독을 음미하며 조용히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비축할 일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러므로 나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여 늘 색다른 매력으로
그 누군가에게
그 무언가에게
성큼 다가갈 수 있도록,
혼자있는 시간의 힘을 믿고 또 믿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