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애니메이션 작가 '앵고'의 158편 로코 탐독기!
아, 이런!
첫 페이지를 넘길 때 낚였다 싶었지만, 자꾸 휘리릭 보면서 손 끝으로 다음 장을 넘기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청소를 뜨겁게라….'
처음엔 그렇게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청소라 함은 뜨겁게까진 필요 없고, 일정한 패턴에 따라 쓱, 자신만의 노하우를 발휘해서 단시간에 해 버리면 된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청소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내게 '뜨겁게……'가 붙어있는 제목은 충분 흥미로웠다. 그리하여 클릭! 한 것이 무려 158편을 넘겨보게 되었다는…….
'뭘 만졌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만졌을 테고…. 거기에 세균들이!!!'
오고 가다 어느 문고리를 불쑥 잡게 된 주인공 장선결. 결벽증을 지닌 인물로 뭐든 불결해 보이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한다. 그래서 지금 그는, 문고리를 만진 자신의 손에 손소독제를 들이붓고 있는 것이다. 곧 손을 문질러대다 찝찝함을 견디지 못해 물로 씻으러 갈 것이고 여차하면 여벌의 새 옷으로까지 갈아입을 것이다.
아, 피곤한 인생이다!
청소업계의 명장이라고나 할까? 명실공히 '청소'의 일인자로, 무엇하나 나무랄 데 없는 청소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덤으로, 외모와 재력 또한 출중하여 많은 여자들이 호감을 갖고 다가오지만, 매번 그녀들의 작은 '흠'이 그를 못 견디게 만든다. 예를 들면, 처음 만난 여자의 귀를 우연히 보다가 그 귓가에 붙은 귀지까지 보게 되어 불결함에 기겁한 후 두 번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뭐 그런 식이다. 그 외에도 결벽증에 관련하여 다소 오버된 여러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니까 그 정도야 괜찮다 싶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가벼움 속에 위트와 다양한 삶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청소업계의 ceo이자 극도의 결벽증 까칠남 장선결. 그의 결벽증은 어디까지인가? 그 심한 결벽증을 딛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그를 누가 진정 구제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읽으면서 궁금증이 계속 생겨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다.
그런 그의 회사에 지저분함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가 입사를 하게 된다. 그녀, 길오솔은 장선결이 보기에 오솔이 아니라 오물이다. 어리바리하다. 항상 자신의 옷에 뭔가를 묻히거나 흘리거나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한심해하고 바퀴벌레 보듯 멀리서 바라보며 소독제를 뿌려대는 장선결. 그런 그를 향해, 길오솔은 그렇지 않아도 큰 두 눈을 더 크고 동그랗게 뜨고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좀 묻으면 어때요? 이런 것쯤이야…….'
그리고선 천연덕스럽게 옷소매로 쓱쓱, 흔쾌히 모든 상황을 해결한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지저분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떠안게 된 빚을 갚아나가고자 묵묵, 어디가 되었든 반짝반짝 빛나게, 뜨겁게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잔뜩 짊어진 삶의 무게를 깨끗이 청소해 가볍게 만들어 버리겠단 듯이.
이런 유형, 다시 말해 로맨틱 코미디 류의 드라마나 영화, 책, 만화들을 보면 항상 일정한 캐릭터의 여주인공이 보인다. (남주인공 역시 캐릭터 유형이 좀 뻔하므로 여기서 논의는 생략하기로….)
1. 자신의 일을 힘들어도 묵묵히 바보스러우리만큼 잘 해냄.
2. 항상 쾌활 명랑한 캐릭터이나, 깊이 알고 보면 내밀한 슬픔이 있음.
3. 순수함이 내재된, 다소 좌충우돌형 기질이 흘러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음.
4. 외모는 아주 빼어나지도 아주 볼품없지도 않으나, 은근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음.
대략, 이러하다.
로코 작가들의 흥행을 위한 공식 같은 인물 설정이 아닐까 싶지만 가끔 현실과 좀 동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딱 '캔디' 스타일로 힘들어도 '마냥 밝고 맑게' 웃는 그녀들. 하지만 내가 보아도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매력적 캐릭터이긴 하다.
문득 이번 기회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인가?'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로코의 여주 스타일처럼 슬퍼도 활력 팍팍인가? 아닌가?! 그럼 나의 강점과 약점은??!!…….
아…. 그런데 오래간만에 나 자신을 분석하려고 맘먹은 이 순간,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이없게도 나는 장선결처럼 어마 무시한 중증 결벽증은 아니라(약간의 결벽증은 있으나) 정말 천만다행이라는 것. 그리고 뒤이어 '이제와 굳이 내 캐릭터를 분석해서 뭐 할 것이냐'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뜨거운 이십 대 싱글은 이미 오오래 전에 다 지나지 않았던가 하며, 아쉬움에 쩝쩝 그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골치 아프기만 할 셀프 분석은 그만두기로 한다.
믿기지 않는 신기한 일이다.
깔끔 대마왕 장선결은 어느 순간, 자신 가까이에 길오솔이 다가와도 결벽증으로 인한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의 엄마조차도 자신에게 손을 댄다거나 옷자락을 스친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전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는 자신이 볼 때도 이상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길오솔을 볼 때마다 마냥 설레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녀와 함께 있으려면 눈을 꽉 감고 모든 불결한 상황도 이겨내야 한다. 실로 엄청난 사랑의 힘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장선결은 그녀가 출근을 하지 않아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날이라도 생기면, 그녀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된다. 결국 그는 이 모든 현상의 복합적인 감정의 정체가 '사랑'인 것을 깨닫고, 자신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어떻게든 지켜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사랑에 있어서 제1원칙은?
장선결의 집안이 퇴근 후 돌아와보니 쑥대밭이 되어 도둑이 다녀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찰관과 주변인들 모두 행방이 묘연한 <길오솔>을 의심한다. 그때 장선결은 그녀의 결백을 백 프로 믿으며 그녀를 옹호한다. 그러다 결국 경찰서에 도난 신고한 것까지 철회하는 단호함을 보인다.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된 이후로,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선한 길오솔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길오솔은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뭔가 집안에 없어질 게 있을 거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결코!'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앞 뒤 모든 상황을 잘 알 수 없으나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믿는다.
사랑에 있어서 제1원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믿음이 아닐까. 믿음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사랑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으리라. 작가는 그런 '믿음'의 결정체로 주인공 장선결을 내세운 듯하다.
주인공의 곁에 다가선 길오솔에 대해 모두 다 부정적 의견을 제시해 흔들릴 법한 상황에서도 굳은 믿음으로 관철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한없이 멋짐이다.
우리 삶에서 서로가 서로를 백프로 신뢰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인가? 단순한 듯 하지만 알 수 없는 사람들의 깊은 진짜 마음을 짚어내거나, 잘 알아보지도 않고 누군가를 백프로 믿는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참 슬픈 현실이다.
660,335명이 구독 중인, 댓글이 2,6만이나 달려있는 길오솔과 장선결의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작가가 3년에 걸쳐 연재한 애니메이션이라 하니 그 노력에 놀랍기만 하다.
읽는 내내, 뜨겁게 청소하는 길오솔이 된 마냥 해맑게 웃었다가 울었다가, 안타까운 상황에서는 마음을 졸였다가 행복했다가……. 그렇게 스토리와 그림에 폭 빠져 색다른 재미를 즐겼다.
일상에 지쳐있던 내게 잔잔한 웃음을 준 그들을 통해 미쳐 생각지 못했던 직업의 세계를 엿보았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삶과 다채로운 사랑도 엿보았다. 그 어느 누구의 인생 하나 무의미한 것은 정말 없다.
인생은 만화처럼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그렇게 로맨틱하지만도, 코믹하지만도 않다.
그래도 때론 로코의 여주인공이 된 듯 '약간의 들뜸'으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조금은 달달하게, 조금은 가볍게 말이다.
지금도 내 눈앞엔 도처에 난무하는 세균들에 못 견뎌, 화들짝 기겁하는 멋진 매력남 장선결이 어른거린다. 그리고 마냥 해맑고 순수하고 진실한 길오솔의 동그란 두 눈과 반짝반짝 빛나는 청소 장면이 떠오른다.
더운 날씨와 반복되는 일상의 무미건조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힘든 일에 쌓여 머리가 너무 무겁다면 로코 주인공으로 흔치 않은 청소와 결벽증의 결합, 그 재미난 설정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한낮의 더위와 고단함을 훌쩍 날려버리길 권한다.
그리고 끝으로….
어디엔가 있을 비슷한 캐릭터를 지닌 제2의 장선결, 길오솔과 같은 이들에게 무한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믿음의 끝판왕들, cheer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