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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김작가 Oct 23. 2016

「당신이라는 만남」

#  49. '문태준'의 시로 아침을 기리는 노래


아침을 기리는 노




 문태준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주시네

햇볕, 입술같은 꽃, 바람 같은 새, 밥, 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 통의 물을 길어오네

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

갈림길과 건널목, 1월 혹은 3월 혹은 9월 혹은 눈송이, 첫 번째, 분수와 광장, 거울 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는 만남

당신이라는 귀

당신이라는 열쇠











화천 산자락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맞이하는 아침.



부산하게 지저귀는 새들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지고, 텐트의 출입문 지퍼를 찌익 잡아내리자마자 이른 시각부터 문앞에 옹기종기 서성이고 있던 색바람들이 훅, 내 파고 . 



아, 이런!

매푼한 흙냄새, 풀냄새가 물.

고향에 온 듯 코 끝이 상쾌하다.



흙냄새를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고 노래했던 정현종 시인이 떠오른다.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결코 맡을 수 없는 이 싱그런 아침 자연의 향.

모든 생명의 원천인 흙냄새와 자연의 향기들에 둘러쌓이면 자연스레 눈을 감으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큰 숨을 내쉬고, 다시 가슴 깊숙이 한껏 청량한 이 아침을 들이켜 마셔본다.







눈을 들어 저 멀리 산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니 가을을 맞아 훌쩍, 하늘의 키가 더 높아졌다.

흰 구름을 어깨동무한 하늘의 깨끗한 푸르름. 색감이 그지없이 맑고 투명하다. 그 하늘 아래 사이 사이 가을을 받아들여야하는 초목들은, 남아있는 자신의 푸르른 색을 덜어내느라 더없이 분주하다.




어디서부턴가 시작되어, 구비구비 드높은 산을 넘고 넘어 여기까지 불어온 이 싱그러운 바람들.

살랑,

부드러이 내 뺨을 스치고,

내 목덜미를 스치고,

이내 온 몸을 스르륵 휘감싸 안아주고

또 어디론가 사라진다.

짧은 순간이지만 지극한 위로다.



포근한 자연에 둘러싸인 넉넉한 루의 아침은, 이렇게  열린다.



'햇볕, 입술같은 꽃, 바람 같은 새, 밥, 풀잎 같은 잠'



이 모든 것들이 오고가는 멋진 하루의 시작!

'당신이라는 만남'새로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오롯 과 밀착되어 자고 일어난 캠핑장에서의 아침은, '기분좋음' 그 자체다.

청량한 자연의 기운 속에서 일어나 가만히 앉아있을 때면, 두 팔과 다리는 초록의 잎으로 가득한 꽃대가 되고 얼굴은 꽃망울을 머금어 터뜨리기 직전의 한송이 꽃이 된다.  그리고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한껏 서늘해진 내 두 눈은, 주변의 풀과 나무들을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찬찬 바라보게 된다.

  


어디선가 쉼없이 울어대는 찌르르 벌레들의 소리.

후르르 지저귀는 이름모를 새의 노랫소리.

산자락을 끼고 돌며 졸졸졸 하염없이 흐르는 계곡물소리.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대는 나뭇잎소리.



이렇게 자연속에서는, 모두 모두 제각각인 것 같으나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게 튀는 소리가 없다. 마음을 착, 놓아버리게 만드는 그윽한 화음이다.

그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화음 안에서 지극히 평화로운 무념무념의 상태를 맞이한 나는,

정말, 살 것 같다.



'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이렇게 노래한 문태준 시인의 마음조금은 알 듯 한 그런 아침!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은 끝없이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한껏 위로해주고, '모든 일에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됨'을, '보다 더 자연스레 살아도 됨' 을 안겨다준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그 결코 갈 것 같지 않던 무더운 여름도 때가 되니 자연스레 가을에 자리를 내주고 있듯이, 모든 것은 그렇게 서서히 언젠가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인 듯 하다.






진정 또 새로운 아침이다.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쥐어준 새로운 시간.

내게 허락된 이 하루를 가만히 우러르는 아침.




'당신이라는 귀'가 내 깊은 속 담긴, 다 말 못한 이야기들을 하염없이 들어주고,

'당신이라는 열쇠'가 내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주고,

'당신이라는 만남'이 오롯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아침.




나는 오늘

언젠가 돌이켜보면 후회투성이의 날들일 지라도, 더욱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당신과의 만' 같은 이 아침을 힘차게 열 것이다.




그리하여,




어디선가 계속 불어오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 아침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걸을 것이다.  

활짝 열린 마음과 활짝 열린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 몰입에 몰입을 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것을 다짐해본다.







#글에 실린 모든 사진은 강원도 화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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