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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RUN RUN

「귀 빠진 날」

#8. 천장에 불빛이 보이지 않아야.....

by 달리는김작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이러시면 애가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거 모르세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의 일이다. 이상하게도 온 몸에 힘이 없어서 도통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진통이 시작되는 듯 해 이른 새벽, 잠자는 세 살 큰 애와 남편을 집에 두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와서 시작된 일이다. 아이가 나올 듯도 한 데, 배가 많이 아픈 것도 아닌 것이 애매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시간만 흐르고 있을 때, 간호사가 매정하게도 나에게 던진 말이다. 내가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그렇게 힘없이 누워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첫 아이 출산하기 일주일 전 쯤 었을까?

언제 아이가 나오는 지 궁금증이 일었을 때, 두려움 반 담긴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애가 언제쯤 나오나요?”

“어, 아이고 생각하기도 무섭다마는......하늘이 노랗다기보다는……. 아니, 옛날 어른들 말이, 천장에 불빛이 보이지 않아야 아이가 나온다그래. 그 말이 맞. 아이고, 지금은 병원에서 다 낳지만, 옛날에는 다들 집에서 낳느라 고생이지. 여자들은 대단해! 그 고통을 잊어먹고, 또 아이를 낳고, 낳고…….”


그랬다.

큰 아이를 낳을 때, 아주 잠깐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렵게 들려온 아이 울음소리에 안도감과 함께 정신을 잠시 놓았던 기억. 잠시 후 아이를 내 가슴에 올려주었을 때, 너무 힘들어 기쁘기보다는 ‘이게 내 아이인가…….’하고 무덤덤했던, 좀 이상하기만 했던 씁쓸함이 머릿속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번엔 둘째다.

경험이 있어 쉬우리라 상상했건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항상 새롭다. 예상 밖이다.

그러나, 아이가 위험하다는 간호사의 말은 예리했다. 내 혼미한 정신을 날카롭게 찔러, 나는 온 몸에 남아있던 모든 힘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멈춰있다 정말 아이가 위험하다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젖 먹던 힘까지 불러 모아 나는 아주 힘겹게, 둘째를 세상으로 내 보냈다. 그렇게 둘째 아이의 귀가 빠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늘.

오늘은 아이들이 아닌 바로 ‘나’, 내 귀가 빠진 날!

나는 그동안 사는 게 바빠, 한 번도 생일을 제대로 챙겨 누려 보질 못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사는 게 바빴다기보다는 마냥 쑥스러워 손사래치며 모든 걸 슬쩍 넘기곤 했다. 가족과 친구들 생일은 칼같이 온갖 이벤트로 챙겨왔으면서도 말이다. 정작 내게는 너무나 인색했다.


그랬던 걸, 올 해는 나의 의도와는 달리 주변에서 내 생일을 챙겨주었다. 그것도 두 차례나 모임을 달리하여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박수를 받으며 촛불을 끄는 행복을 맛보았다. 몹시 쑥스러웠지만, 한편으로 내 존재가 새삼 빛나는 순간이었다. 나를 통해 세상에 빛을 본 예쁜 아이들과 내가 살아오면서 가슴으로 만나온 소중한 친구들이 마련해 준 생일 축하 자리는, 삭막한 일상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따뜻함 그 자체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행복감이다.


생일을 맞이하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등 몇몇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출산의 고통을 생각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분명 뭔가 주어진 사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토록 어렵게 이 세상에 얼굴을 밀었으니, 개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아 발현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 아닐까싶다. 사실 나도 아직 그 사명을 정확히 찾았다고는 할 수 없어 계속 방황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내 생이 허락되는 그 날까지 사명을 찾기 위한 고민과 방황은 계속되더라도 ‘귀가 무사히 빠진 내 운명’에는 거듭거듭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생일을 맞이하여, 이렇게 이 나이까지 무탈하게 잘 살 수 있게 늘 기도해 주시는 나의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천장에 불빛이 안 보이도록 죽을 힘 다 하셨을 내 어머니!

그렇게 나를 무사히 귀가 빠지도록 해 주심은, 세상에 나를 밀어 보내주심은, 평생 갚아도 갚아도 못 갚을 빚이다.


"엄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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