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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Oct 22. 2021

#06 사랑의 역사

가장 개인적인 역사가 인류 보편의 역사가 되게 하는 힘, '사랑'

  "나 너무 사랑 타령만 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중에 갑자기 걱정이 밀려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한탄을, 하지만 사실은 질문이 숨어있는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너무 비슷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터놓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 매번 물음표 대신 애매한 마침표로 문장을 흐려버리고 말았다. 막상 글을 쓰려고 앉아 책 제목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사랑의 역사』. 어떻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금은 머쓱한 기분으로 글을 시작한다.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2020).

  『올리브 키터리지』 를 다룬 글에서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의 이름으로 소설 제목을 짓는 것에 대해 썼다. 다른 의미로, 제목에 '사랑'을 넣는 것도 못지않게 리스크가 크다. 토니 모리슨도 소설 제목을 『러브』(사랑)라고 짓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민에 빠졌다고 밝혔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툭하면 쓰이는 가장 공허한 클리셰이자 가장 무의미한 단어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 안에 증오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인간의 감정이기도 하다"(원문: "It is easily the most empty cliché, the most useless word, and at the same time the most powerful human emotion—because hatred is involved in it, too."). 이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였음에도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책을 내놓는 것은 어려웠다는 뜻이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문학은 없다. 로맨틱한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친구를 향한 사랑, 짝사랑, 외사랑 등, 사랑 자체의 종류도 셀 수 없이 다양하고, 삶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이 일방적이기 때문에, 사랑이 부재하기 때문에, 사랑이 지나치기 때문에, 사랑에 배신당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막 찾았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문학에서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다. 그만큼 인간 삶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이자 감정이므로.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리슨이 말한 대로, 가장 텅 빈 단어이기도 하다. 이처럼 자주, 쉽게 쓰이는 단어가 또 있는가? 아주 단순한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처럼, 가장 익숙한 단어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그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은 무려 사랑의 '역사'다.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와 『광기의 역사』가 연상된다. 푸코는 실제로 두 개념의 역사를 추적하고자 했으니, 이들은 내용에 충실한 제목들이다. 그러나 픽션의 제목을 '사랑의 역사'라고 짓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도대체 무슨 소설이기에 크라우스는 이토록 거창한 제목을 붙이기로 결심했을까?


  다소 당황스럽게도,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부고가 쓰일 때. 내일. 혹은 그다음 날. 거기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레오 거스키는 허섭스레기로 가득 찬 아파트를 남기고 죽었다"(9). 인류 보편적 가치를 설명할 것만 같은 웅대한 제목 뒤에 시작되는 첫 문장 치고는 이렇게 개인적이고 하찮을 수가 없다. 레오폴드 거스키는 투박할 정도로 불쑥 독자 앞에 등장한다. 소설 첫 장에서 독자가 만나게 되는 레오는 솔직히 말해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니다. 평범하게, 혹은 그보다 조금 못나게 늙은 남자. 나이는 들었지만 어딘지 어설프고, 특이하고, 미성숙한 듯한, 현명한 노인보다는 때로는 추잡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늙은이. 그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한 소년이 있었고, 그는 한 소녀를 사랑했으며, 그녀의 웃음은 소년이 평생에 걸쳐 답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22-3)

그러니까 이 늙은 남자가 소년이었던 시절, 사랑한 소녀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책은 소년이었던 레오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해온 사랑을 기록한 일종의 연대기일까?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은 레오 거스키라는 한 인간의 사랑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훨씬 흥미롭고 복잡한 이야기다.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의 뉴욕. 『사랑의 역사』현재 시점의 공간적 배경.

  다음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 내 이름은 앨마 싱어.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아빠에게서 받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는 모든 소녀들의 이름을 따 내 이름을 지었다"(57). 『사랑의 역사』는 이 책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소설 속 세계에 존재하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것이다! 레오폴드 거스키와 앨마 싱어, 그의 남동생 버드, 그리고 즈비 리트비노프, 네 명의 화자가 돌아가며 목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남매인 앨마와 버드를 제외하고는) 이들 각각의 이야기 간의 연결점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시간순으로 진행되지도 않고, 현재의 뉴욕과 과거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폴란드 등을 오가며 어지럽게 흘러간다. 그래서 도대체 이 화자들이 왜 한 소설에 같이 등장한단 말인가? 왜 이들의 이야기를 엮어 작가는 『사랑의 역사』라는 제목을 붙였는가? 그러나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이 네 화자의 이야기가 얽혀 든다. 『사랑의 역사』라는 소설 속 소설을 매개로. 플롯상의 반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며 이 책의 묘미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비교하면 책 속의 책 『사랑의 역사』는 훨씬 추상적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인간의 최초 언어는 손짓이었다.(…)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더 적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했다.(…) 언어의 손짓과 삶의 손짓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 가령, 집을 짓거나 음식을 만드는 노동은 사랑해 혹은 진심이야 하는 뜻을 전하는 손짓 신호에 버금가는 의사 표현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나 파티에 있을 때, 혹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당신의 손이 때때로 팔 끝에서 어색하게 늘어진다면―그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제 몸의 낯섦을 인식할 때 느껴지는 슬픔에 휩싸인다면―그것은 당신의 손이 정신과 육체, 두뇌와 심장, 안과 바깥 등의 구분이 훨씬 희미했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11-3)

'감정의 탄생'이라는 장도 있다.

  누군가가 막대기 두 개를 맞대고 비비다가 처음으로 불꽃을 일으킨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처음으로 기쁨이 느껴진 순간, 처음으로 슬픔이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한동안 새로운 감정들이 계속해서 발명되었다.(…) 반시계 방향의 어떤 골반 동작이 황홀경의 탄생을 촉발했을 것이고, 번개의 일격이 최초의 경외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아니면 앨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몸이 그랬는지도 모른다. (165)

  이 『사랑의 역사』는 제목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이야기를 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 소설 속 소설에는 수많은 '앨마'가 등장한다. "최초의 여자는 이브였는지 몰라도, 최초의 소녀는 언제까지나 앨마일 것이다"(89). 이브가 기독교적 세계관 최초의 여자인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최초의 소녀라는 이 '앨마'는 누구인가? 언뜻 보기에는 허구의 세상 속 인류의 발생에 대한 묘사처럼 읽히지만, 이 『사랑의 역사』 또한 사실은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 앨마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된 사건은 소년, 즉 화자에게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폭발적인 일이었다. 이런 사랑은 머리와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이, 육체가, 본능이 관여하는 영역의 것이다. 소년은 앨마라는 소녀를 사랑한 순간부터 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몸이 기억하는 어떤 것, 인류의 시작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육체적 움직임, 반응, 감정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본능적이며 추상적인 특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사적인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만의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책 속의 책 『사랑의 역사』는 앨마 메러민스키라는 소녀와 그를 향한 사랑을 중심으로 창조된 소년만의 세계에서 발생한 인류에 대한 기록이다. 그 사랑은 너무나 근본적인, 마치 아주 먼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유전자에 새겨진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책 속의 책의 내용 때문에 이 소설이 『사랑의 역사』인 것은 아니다. 『사랑의 역사』라는 책이 소설 속에서 집필되는 배경, 출판된 책 중 한 권이 인물들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는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인물들을 연결 지어주는 방식 모두를 통틀어 엮으면 역사라 이야기할만하다. 사랑으로 쓰고 사랑으로 출판하였으며 사랑으로 선물하고 사랑으로 번역한, 그리하여 사랑을 상실하여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위로하는 책.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을 한다. 그런데 이 각각의 사랑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매개로 연결되어, 의도치 않게 하나의 역사를 완성한다.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인물들의 삶이 하나의 책을 중심으로 촘촘히 얽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전체적인 서사가 이 소설이 『사랑의 역사』인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유대인이라는 것, 유대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 또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하는 이야기의 한 축이다. 크라우스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에 살았던 유대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잔인한 전쟁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역사, 그 비극적인 개인사를 우리에게 낱낱이 보여준다. 홀로코스트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나머지 스스로의 정체성과 더불어 육체적 존재, 실존하는 몸마저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처절한 인간상을 묘사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리나 팔을 잃듯, 나는 사람을 지워지지 않게 하는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진을 찍은 것은 나였으므로, 이것이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라면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126). 가족을 잃고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레오는 자신이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남자"(26), "투명인간"(204)이었으므로. 그가 천천히 정체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사라져 버린 신체를 되찾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때부터 여윳돈이 있을 때마다 그 촬영 부스에 가곤 했다. 처음에는 항상 결과가 같았다. 그러나. 계속 시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셔터가 닫히는 순간에 몸을 움직였다. 그림자가 나타났다. 다음번에는 내 얼굴 윤곽이 나타났고, 몇 줄 후에는 내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짐의 반대였다"(126). 

  물론 문자 그대로 몸이 투명하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대에 이민자라는 것, 그중에서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이라는 것은 신체적 움직임마저 제한하는 족쇄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민자였고, 본국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한번은 기차표를 사는 방법을 알 수가 없어서 기차를 여섯 대나 놓쳤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냥 기차에 탔을 것이다. 그러나. 화장실 물 내리는 걸 깜빡했다가 강제 추방될까봐 겁내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에겐 있을 수 없는 일"(201). 익살스러운 레오의 독백 이면에는 실질적인 공포가 깔려있다. 낙인찍힌 타자로서, 철저한 그 사회의 소수자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는 강박. 그런 숨 막히는 역사적 맥락 속에 그를 살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린 시절의 첫사랑. 그러나 그를 노년까지 살게 한 끝사랑. 레오 거스키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들이 스러지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아 개개인의 역사를 남기게 한 원동력이 사랑이라는 것을, 살아남은 그들의 후손이 사랑으로 맺어지고 사랑을 배우며 또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크라우스는 네 명의 화자를 통해 보여준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 계단.

  현재 시점의 뉴욕에는 열다섯 살 소녀 앨마 싱어가 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중고서점까지 흘러들어간 『사랑의 역사』 한 권이 그의 아빠 다비드 싱어와 엄마 샬롯 싱어를 이어주었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딸에게 '앨마'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 앨마는 한때 고생물학자가 되기를 꿈꾼다. 고생물학자가 뭐냐는 질문에, 앨마의 엄마는 이렇게 답한다. "삽화가 실린 온전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안내서를 백 개 조각으로 찢어 미술과 계단에서 바람에 날려 보낸 다음, 몇 주를 기다렸다 다시 가서 피프스 애비뉴와 센트럴파크를 샅샅이 훑고 다니며 남아 있는 조각들을 최대한 많이 모은 후, 그 조각들로 유파와 양식과 장르와 화가 이름을 포함한 회화의 역사를 재구성해보는 것"(79)과 비슷한 일이라고. 『사랑의 역사』를 읽는 독자들은 마치 고생물학자가 된 것처럼 페이지 여기저기에 흩날리는 조각조각의 사랑을 이어 붙여 하나의 '사랑의 역사'를 완성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깨닫는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사랑의 역사』이며, 한 명 한 명의 삶이 어떻게 '사랑의 역사'가 되어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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