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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Oct 21. 2021

#05 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소수자의 잠재적 힘과 전략적 낙관주의

  나는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여성의 눈, 페미니스트의 눈,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인)동양인의 눈 등. 나라는 사람은 이런저런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졌다. 그리고 각각의 정체성은 나에게 특권을 주기도 하고 내 (사회적, 신체적)활동을 제한하기도 하며 내가 삶을 경험하는 방식,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는 시각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직접 겪는 일은 아닐지라도 나는 다른 이들, 특히 소수자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흑인, 여성, 퀴어, 이민자 등)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떠한지 이해해보려 노력해왔다. 내 세부 전공이 미국 소수자 문학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 시야의 삼각지대에 자리했던 소수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주로 관심 가져왔던 이들보다 더 가까이 있는 소수자.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가 '디아스포라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서경식, 『디아스포라의 눈』, 한승동 옮김, 한겨레출판(2012).

  '디아스포라'란 무엇일까? 서경식 교수는 디아스포라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원래 이산(離散) 유대인을 가리키는 이 말은 현대에는 좀 더 폭넓게,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나와 같은 재일조선인도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이라는 외적인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그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언제나 마이노리티(소수·비주류)이다. 당연히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건 즐겁지 않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에겐 이점도 있다. 그것은 머조리티(다수·주류)에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5-6)

머리말의 이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첫째로 '조선인'이나 '민족 분단'과 같은, 이제는 낡은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의 등장 때문이었고, 둘째로 소수자로 사는 건 즐겁지 않지만 소수자이기 때문에 가지는 힘도 있다는 말은 내가 다른 주제로 항상 반복해왔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조합에 이끌려 나는 큰 기대 없이 펼쳤던 책의 첫 장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눈』은 서경식 교수가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낸 책이다. 따라서 여러 편의 짧은 글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마다, 또 서경식 교수의 바뀌는 관심사에 따라 글의 주제는 다양하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과 책을 읽은 후에도 오래도록 남은 생각 몇 가지만 기록해보려 한다.

  서경식 교수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마이너리티, 즉 소수자는 재일조선인이다. 그들은 국민국가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되는 소수자들이다. 따라서 그가 주로 비판하는 대상도 이러한 배제적인 국민국가, 특히 "애매한 혈연 공동체적 정서에 의거하는" 국민국가이다. 많은 이들이 큰 문제의식 없이 배우나 가수에게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붙이는 것이나 스포츠 선수를 '우리 아들'로 부르는 것을 그는 비판한다. 무해하게 느껴지는 이 행위가 "본래 다양한 타자들로 구성되는 공공적인 사회를 '피를 나눈 가족'으로 구성되는 혈연 공동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65). 재일조선인들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완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무심코 한국을 혈연 공동체라고 여길 때 배제되는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는 '민족'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사용한다. 그가 '민족' 개념이 일반 대중에게, 그리고 학계에서 비판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는 직접적으로 "내가 여기서 쓰는 '민족'이라는 말이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폐해가 많은 것이라면 현재적 의미의 '우리'에 해당하는 다른 개념을 찾아서, 곧 새로운 시대 인식의 공유를 추구하면서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도 한다(218).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글에서 그는 통일에 대한 강한 갈망 또한 지속적으로 내비치는데, 이는 나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었다. 고백하건대,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그러하듯 통일은 너무나 멀고 아득한 일처럼 여겨졌고, 실제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남한의 경제활동인구가 지어야 할 경제적 부담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딱 그 정도의 희미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통일이 추상적인 염원이 아니라,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절박한 과제였다. 재일조선인에게 "귀속의식의 대상은 분단된 어느 한쪽의 '국가'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민족'이며, 아직 실현되지 못한 자기해방의 과제로서의 '통일된 조선'"이라는 것이다(서경식 1998, 366). 그들은 남북이 분단되기 전 조선반도 출신자로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일본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일본의 패전 이후에는 일본 시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분단된 본국의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타자로 남게 되었다. 재일조선인들이 불안한 줄타기를 벗어나 정체성을 확립하고 참정권을 획득하며 시민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본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되어야 함은 물론이요,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떠나온 '집'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었다.

  그러나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만 논하지 않는다. 그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온 디아스포라/소수자로서의 경험과 대학에서 인권과 관련된 교양 강의를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구식민지 출신자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더 나아가 전혀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나 '사회 질서를 잘 지키는 일본인'이라는 미풍을 전시하기 위해 소외된 도호쿠 지방 사람들, "여성임에도 우수하다", "여성치고는 탄탄하다" 따위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는 채용 과정을 견뎌내야 하는 여성들, 생존 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서경식 교수는 벤야민의 유명한 '역사의 천사'를 인용하여 이렇게 쓴다.

우리에게는 식민 지배, 제국주의 침략,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가 벤야민이 말하는 강풍이다. 그리고 그 강풍 속에서 재일조선인 같은 마이너리티들은 이른바 '진보'를 위해 역사의 우수리로 잘려버리고 망각될 존재다. 말하자면 우리는 '역사의 천사'가 바라보고 있는 와륵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우수리로서, 와륵으로서 "나는 여기에 있다"고 목소리를 내고 증언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 재일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타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88-9)

  서경식 교수가 이야기하는 '타자들'은 모두 각기 다른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의제에서는 서로의 이익이 상충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서경식 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은, 그리고 내가 격렬하게 동의하는 지점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감각이 분명히 있고 소수자이기 때문에 가지는 잠재적 힘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수자들끼리 연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의 말대로 "불황의 바람은 마이너리티에게 먼저 거세게 불어닥"(74)치고,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타자에 대한 상상과 공감으로까지 승화"(137)시켜 이 바람을 함께 이겨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지금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제당하는 소수자들의 경험과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에서 나올 수 있다.

  『디아스포라의 눈』을 읽으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의 방향성도 재확립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스스로를 두루뭉술하게 '이상주의자' 또는 '낙관주의자'라고만 칭해왔는데, 팔레스타인 친구 이야기를 하며 그가 언급한 안토니오 그람시의 '전략적 낙관주의' 개념을 찾아보자마자 유레카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내 이성은 비관적이지만 내 의지는 낙관적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는 내가 마주칠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의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악을 상상한다. 나는 절대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거의 없다.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이 인내심은 수동적이지 않으며 불굴의 의지에 가깝다."(원문은 "[M]y mind is pessimistic, but my will is optimistic. Whatever the situation, I imagine the worst that could happen in order to summon up all my reserves of willpower to overcome each and every obstacle. Since I never build up illusions, I am seldom disappointed. I've always been armed with unlimited patience—not a passive, inert kind, but a patience allied with perseverance"이다. 부분적으로 의역했으며, 오역이 있을 수도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머리로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오히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 변수들에 대비하면서도 마음은 그 어떤 고난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 대책 없이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낙관주의적 사고를 하는 것. 잔인하고 비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남겨두는 (인)문학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진로마저 결정했으니 이 이야기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와닿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경식 교수가 '출판'의 의의에 대해 쓴 대목을 읽었을 때에 기뻤다. "책과 사랑에 빠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220), 출판인들은 누가 읽을지 모르는 책을 묵묵히 만들어낸다. 그 책을 읽은 독자가 자신이 안주하고 있는 세계의 외부에도 다양한 세계와 타자들이 존재하고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미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민중예술의 광맥은 소진되지 않았다" (163). 나는 그 말을 진정으로 믿고, 새로운 민중예술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을 정말로 애정하게 된 것은 이 책이 쉽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발문에서 한홍구 교수는 이렇게 쓴다. 

그의 글은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울림이 있으나 현학적이지 않다.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의 비명이나 신음을 전달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어렵고 현학적일 수 없다. 평론은 너무 어려웠고 예술 이론이나 사회 이론은 '리론가'들끼리의 암호였다. 서경식 선생은 전공이 없다. 그는 비전문가이고 그가 가르치는 것은 교양이다. 교양은 없고 전공만 있는 시대에, 인문학적 기초는 없고 붓질만 남은 시대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관심은 없고 나만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시대에, 때로는 타인의 고통마저 우아하게 소비되는 시대에 서경식은 고통과 기억의 감수성이라는 신발을 신고 역사의 보고로 가는 길을 내고 있다. (295)

하기 어렵고 듣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는 쉽게 풀어낸다. 석사 공부를 하던 때에 동기들과 농담처럼 이런 약속을 했다. 우리가 학자가 되면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어려운 글은 쓰지 말자고. 나는 (당장은) 다른 길을 걷기로 했으나, 그 약속만큼은 지키고 싶다. 공부깨나 한 사람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지적 허영으로 가득 찬 글이 아니라 모두가 쉽게 읽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나에게 이 책과 서경식 교수는 롤모델이 되었다. 제목의 용어가 생소해 보일 수 있겠고 재일조선인들의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출간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로 가득하고, 또 정말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제는 절판되어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는 수고를 들여야겠지만,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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