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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Jun 29. 2021

#01 언니밖에 없네

미래를 향해 행진하는 퀴어함, 그 다정한 힘에 대하여

  『언니밖에 없네』는 세 번째 큐큐퀴어단편선으로, 일곱 편의 단편 작품이 실려있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 단편집은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도록 가지고 몇 번이나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린 기억이 있다. 정확히 왜 그렇게 이 책을 읽고 싶어 했는지는 사실 좀 가물가물하다. 내가 열렬하게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크게 한몫했겠지만, 아마 "퀴어" 단편선이라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나를 아주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러나 공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책을 사서 읽는 일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던 때였으므로 차마 집으로 택배를 받을 수 없어 기회만 노리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게 되었을 때 재빨리 이 책을 찾아 사들고 나왔다.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얻을 수 있어 기뻤지만 그러고도 한참이나 책장에 고이 꽂아만 놓은 채 읽지 못하다가, 정신과에 처음 내원하던 날 이 책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아직 장편을 읽기에는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고 책의 뒤표지에 적힌 "사려 깊고 다정하고 용감한 계속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할 불행 따윈 없는 완벽한 퓨처 팝픽션 앤솔로지"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동안은 모든 종류의 불행은 멀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병원에 간 첫째 주와 둘째 주, 두 번의 월요일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언니밖에 없네』, 큐큐(2020).


  먼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월요일의 책"이라는 제목 아래 쓰이는 모든 글은 아주 가벼운 기록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학술적인 목적의 글이 아니므로 특별한 조사나 연구 없이 생각이 흐르는 대로 훌훌 써 내려가는 글이고, 따라서 단어나 용어, 표현의 사용이 때로 적확하지 않을 수 있다. 등장하는 모든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설명해야 하는 류의 글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해오다 보니 일종의 강박이 생긴 듯하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자신이 없다...) 이 변명과도 같은 몇 줄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즐거우려고 쓰는 글이야. 어렵지 않게 써도 괜찮아.'하고. 글을 읽고 쓰는 근육이 다시 조금씩 붙어 힘이 생기면 언젠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글을 쓸지도 모르겠지만, 당장은 책을 읽으며 끄적인 메모에 살만 조금 붙여보려 한다. 즐겁고 가볍게 쓰자. 즐겁고 가볍게.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일곱 편의 단편 중 세 편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가장 흥미를 끌었다. 지구가 멸망해가고 있거나, 이미 한 번 멸망했다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시간대의 이야기들. 코로나 시대에 쓰인 글들인 것을 감안하면 놀랍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환경문제는 언제나 중요한 이슈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어왔지만, 인류 존속에 대한 위협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생기는 궁금증들이 있다. 이 단편선에 미래의 이야기가 많이 실린 것은 단지 코로나 시대에 쓰였기 때문인지, 환경문제에 대한 작가의 개인적인 관심 때문인지, 아니면 "퀴어"라는 소설집의 주제와 상관이 있는 것인지. 작품을 집필한 작가들의 생각을 알 길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교차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퀴어와 환경, 노인 차별(에이지즘), 장애인 차별(에이블리즘), 인종 차별, 여성 차별(페미니즘) 등. 각종 혐오와 혐오로부터 비롯된 차별, 그리고 그 차별과 맞서 싸우는 운동은 어딘가 다 맞닿아 있다. 그 지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주 복잡하고 정교하게 분석하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발 붙이고 살고 있는 지구와, 이 지구를 함께 누리는 모든 존재들에게 다정하기 위한 노력. 물론 그 노력의 구체적인 형태가 언제나 완곡하고 부드러울 필요는 없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진보만을 성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문학의 힘을 믿고 싶어 진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고 더 나아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언니밖에 없네』도 그런 힘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퀴어함은 미래로 향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현재에는 도저히 실현되기 어려워서 헤아리기 어려운 먼 훗날이 되어서야 이루어질 수 있다, 는 식의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퀴어함"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그 자체만으로 언제까지고 토론할 수 있는 큰 질문이지만 아주 느슨하게는 "정상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간과 시간에 따라, 구체적으로는 어떤 문화권, 국가, 사회, 지역에 어떤 시대를 사느냐에 따라 무엇이 "정상"인지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퀴어함"이라는 개념도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흘러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존중받게 되어도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여겨져 "퀴어"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퀴어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비참함이나 슬픔, 소외와 거리가 먼 개념이다. 퀴어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은 당연하게도 각기 다르기에 퀴어의 삶은 어떠하다! 고 선언할 수는 없다. 내가 가리키고자 하는 대상은 "퀴어함"이라는 개념, 언제든 어디서든 어떠한 형태로든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끌어안아 퀴어라는 깃발 아래 모으는 포용력, 그리고 모두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비참함과 슬픔, 소외와 맞서 싸우는 힘이다. 추상적이고 나이브한 말이다. 아닌 척하고 싶지만 나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다.


  퀴어함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읽은 퀴어 단편선에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만나 반가웠다. 이 작품들이 더 반가웠던 이유는 모두 다른 색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퀴어함"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퀴어함이 대부분 성애와 젠더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아쉽기는 하다.) 인류의 존속이 불분명한 때에는 몸과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 이성인가 동성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랑이 성애적 사랑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우리는 사랑으로 살아간다. 미래의 퀴어 이야기들은 오직 사랑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소중하다. 


    이 책이 정말로 근사한 이유는 여러 작가가 모여 다양한 퀴어의 이야기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너무나 현실적인 퀴어의 이야기부터 상상으로 빚어낸 미래의 세상을 살아가는 퀴어의 이야기까지. 상대적으로 덜 가시화된 여성 퀴어를 다룬 작품이 많은 것도 기뻤고, 젊은 여성 퀴어와 나이 든 여성 퀴어의 이야기를 모두 읽을 수 있어 충만한 기분이었다. 세상에는 오만가지 비퀴어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우리는 좀 더 다양한 퀴어의 이야기를 볼 권리가 있다! 모든 작품의 모든 인물이 다른 고민을 한다는 점도 좋았다. 헤테로 커플마다 다른 질감과 색깔과 밀도의 사랑을 하듯 퀴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퀴어의 삶은 "정상성"으로 빚어진 곧은길을 그대로 따라 걷는 사람들의 삶과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본질적으로 대단히 다르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특정 부분만을 콕 집어 "이건 비정상"이라고 사회가 낙인찍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다. 다르다고 구태여 생각하지 않으면 다를 게 없다. 그냥 모두가 나만의 사랑을 하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문득 2018년 참가했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떠오른다. 후끈하게 더운 날씨에 기초체력이 좋지도 않은 내가 그 긴 거리를 쉼 없이 춤추며 행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행진을 끝까지 하고는 녹초가 되어 지하철에 거의 주저앉은 채 귀가했지만,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땡볕 아래 모여 아낌없이 발산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받아 그 즐거운 힘으로 그해 여름을 났다. 소설집 속의 인물들과 그날 함께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행진했던 사람들, 그리고 모든 현실의 퀴어들이 평범함만을 누리게 될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퀴어"라는 말이 무용해질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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