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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프랑스의 한 노숙인이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예전에 프랑스의 한 노숙인이 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부분이 있다. 그는 노숙을 시작한 뒤로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랬을까? 바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말했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실패한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또 희망이 되지 못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싫었다고. 겨울에는 동이 채 트기도 전에 자리를 정리해서 아이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신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을 위한 그의 따뜻한 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온통 성공한 사람들, 잘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인스타 같은 SNS 세상은 더욱더 그렇고. 나름 인생의 쓴맛을  볼 대로 본 어른들도 그런 모습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멘탈이 흔들리고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아이들은 오죽할까. 다른 이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게 될 위험이 더욱 클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보통 사람인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패담이란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결국 성공하고 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무언가에 실패한 뒤 그 어떤 반전도 없이 그냥 담담히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가리킨다. 어쩌면 그냥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실패담이냐고?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출나게 성공하지 못했으니 실패한 것이라 여기며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외치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커뮤니티에서 역대 책 순위를 매긴 적이 있다. 온갖 고전들이 다 나왔는데 낯익은 소설이 13위에 있었다. 바로 '스토너'이다.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이라 참 반가웠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왜 위안이 되었냐고? 이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는 그리 대단하지 못한 인물이다. 엄청난 꿈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끝내 이루지도 못했다. 부부 관계도 그리 좋지 못했고. 어떻게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 흔해 빠진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다. 스토너의 작가 존 윌리엄스는 주인공인 스토너를 영웅이라 칭하며 그를 안타까워하는 많은 독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다른 독자들과 같은 편이었으나 소설을 다 읽은 뒤 작가 편에 서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다들 대단한 포부를 안고 살아간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장래희망으로 공무원을 많이 꼽는다는데 그것은 분명 부모들의 영향일 것이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예로 들어보자. 초등학생, 중학생에게 물으면 적어도 SKY 대학 혹은 인서울 대학을 가서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전문직이 될 것이라 답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게 물으면 어떨까? 꿈의 크기는 현실을 반영해서 훨씬 더 작아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사실은 특출나지 못한 보통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보통의 삶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대다수는 서서히 진행되는 이 과정을 받아들이지만 몇몇 아이들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 학교의 시험 성적, 수능 성적으로 자신의 남은 삶을 속단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해버리고 만다. 


나 역시 어릴 때는 공부가 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40년 넘게 세상을 살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못 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보통 대학을 가도, 아니 대학 자체를 가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가면 인생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 사실은 보통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더 많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선가 읽고 크게 공감한 글이 생각난다. 망하면 어떡하지 조마조마하며 살 것이 아니라 망하면 어때 씨발 이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표현은 과격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노숙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 말하는 그가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말하는 실패를 경험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란 사실, 인생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지 않다는 사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경솔하게 삶을 놓게 될 누군가의 미래가 바뀌게 될지도 모르고. 


특출나게 성공한 인생을 살지 못해도 괜찮다. 큰 반전 없이 끝날 미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삶을 살아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한 성공의 모습이 아닐까. 존 윌리엄스가 보통의 인생을 살아낸 스토너를 영웅이라 칭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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