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이란 책에 손이 갔다. 코넬대 칼 필레머 교수가 5년 동안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책이다. 이것만 얘기해도 어떤 내용인지 대략 감이 올 것이다. 당신의 예상이 맞다. 이 책은 인생에 있어서 뭣이 중헌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수없이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인생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처음으로 나오는 인터뷰이는 요양원에 살고 있는 준 할머니이다. 그녀는 어떻게 요양원에서도 활기차게 지낼 수 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도 알겠지만 희망은 지금 이곳에서, 자네가 만드는 거야. 불행할 게 뭐 있어? 여기 사람들은 늘 불평만 해. 하지만 난 불평하지 않아.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네."
칼 필레머 교수는 50이 다 된 자신을 젊은이라 불러줘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한다. 그도 나처럼 흘러가는 젊음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준 할머니의 말씀이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마흔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 나 역시 충분히 젊은이일 수도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덕분이다.
창밖에 해가 빛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도 감사하는 준 할머니를 보며 문득 월든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서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것이다."
참 좋은 말이지만 월든을 처음 읽었을 때는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왜냐고?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28살부터 30살까지 월든 호숫가에서 살면서 기록한 것들을 엮은 책이다. 오두막 생활을 마치고도 책이 나오기까지 7년 정도가 걸려 그의 나이 37살에 출간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새파랗게 젊은 소로우가 양로원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와닿을 리가 있었겠는가.
그런데 오직 죽음만이 출구인 어두운 분위기의 요양원에서도 창밖의 햇살에 감사할 줄 알고,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자신의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준 할머니 덕분에 소로우의 말이 진실임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까지 내다 볼 줄 아는 현자들의 통찰이 새삼 놀라웠다.
글을 쓰다가 유튜브에 '기운 나는 노래'를 검색했더니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가 나왔다. 두두둥 하는 전주만 들어도 왠지 기운이 나는 듯했다. 노래의 가사 중 마음에 와닿은 것이 "많이 아파도 웃을 거야"와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였다. 또 햇살이다. 힘이 들고 어려울 때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다시 한번 힘을 내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한 유튜버도 떠올랐다. 그녀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많이 아파도 웃을 거야 라는 말은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정말로 실천 가능한 것이었다.
준 할머니의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본다. "희망은 지금, 이곳에서, 자네가 만드는 거야. 불행할 게 뭐 있어? 오늘,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자네가 해야 할 일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