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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7. 2023

존재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들

옥탑방과 반지하, 그리고  ktx 역방향 좌석

몇 달 전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SRT 열차를 타러 갔다. 그런데 파업 어쩌고저쩌고의 사정이 생겨 KTX 열차로 대체된다고 했다. 순간 불쾌했다. KTX 열차는 대부분 SRT 열차에 비해 좌석 간격이 더 좁아서 불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이파이도 없었고 충전 콘센트도 없었다. 모든 KTX 열차가 아닌 내가 탄 열차나 자리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 가운데 4명이 앉는 패밀리 석으로 배정이 되었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은 역방향 좌석을 피했다는 사실이었다. 역방향 좌석에 앉아본 이들은 알 것이다. 기차가 뒤로 달리는 것은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란 사실을. 아마 역방향 좌석이 배정되었다면 분명히 항의했을 것이다. 이렇게 너네들 마음대로 기차를 바꾸고 역방향 좌석을 주었으면 뭔가 요금 할인 등의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진심이라고는 일도 없는 말뿐인 사과는 집어치우고. 


우리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역방향 좌석이었다. 심지어 부산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맞은편 자리에도 승객이 탔다. 서로 무릎이 닿게 앉아 있는 그들이 얼마나 불편해 보였는지 모른다. 처음 KTX를 한국에 들여온 놈들은 퍼스널 스페이스란 개념도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은 원래 낯선 타인이 일정 범위 이내로 다가오면 불편감을 느낀다. 그래서 타인에게 침범 받지 않고 싶어 하는 개인의 공간, 퍼스널 스페이스가 꼭 필요하다. 


글을 적다 보니 처음 KTX를 타보고 황당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리가 좁아도 너무 좁았다. 분명 프랑스인가 어딘가에서 쓰던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사람들이 쓰던 것인데 도대체 왜 이리 좁을까 생각했다. 창문의 위치나 옷을 거는 고리를 보고 깨달았다. 좌석을 억지로 더 늘려서 집어넣었다는 사실을. 


서로의 무릎을 교차해서 앉아야 하는 패밀리 좌석과 역방향 좌석이란 개념도 도무지 이해되질 않았다. 그동안 타온 새마을호, 무궁화호, 비둘기호 그 어느 것에도 역방향 좌석이란 것은 없었다. 열차가 저 멀리 갔다가 돌아서 오는 것인지, 좌석을 일일이 돌려서 방향을 바꾼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패밀리 좌석과 역방향 좌석의 장점도 있었다. 가격이 순방향 좌석보다 조금 저렴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에 미친놈들이 좌석을 억지로 더 집어넣고 약간의 할인을 해줄 테니 너네 서민들은 군말 없이 타기나 하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도 퍼스널 스페이스의 개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아닌 돈에 혈안이 되서 애써 무시했겠지.


반지하나 옥탑방을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든다. 둘 다 살아본 적이 있다. 소감은 둘 다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옥탑방에 살면 여름에는 쪄죽고 겨울에는 얼어 죽는다. 반지하는 계절 상관없이 습기와 곰팡이에 서서히 죽어가고. 반지하의 경우 북한의 공습을 대비해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걸 허가해 주거나 법으로 강제한 놈들은 KTX 열차에 좌석을 잔뜩 집어넣은 놈들과 똑같은 것들이다. 공습으로부터 안전하려면 완전한 지하실을 만들었어야지. 그리고 거기에 사람이 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 만들었어야지. 그래야 위기의 순간에 더 많은 이들이 대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울의 수많은 반지하를 보며 그놈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반지하를 만든 덕분에 형편이 넉넉지 않은 이들도 서울에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 군말 없이 살기나 하라고. KTX를 들여온 놈들도 그렇고 이놈들도 그렇고 정말이지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아, 물론 타인이 아닌 자신들의 인간다운 삶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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