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트 더블이 뭐냐고요? 왼손으로 연속해서 두 번 상대를 가격하는 것을 가리키는 복싱 용어입니다. 왜 레프트 더블이란 기술을 쓰냐고요? 대개는 양손을 번갈아 치기 때문에 한 쪽에서 두 번의 펀치가 나올 것이라 상대가 예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로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니 더더욱요. 어찌 보면 상대의 방심을 노리는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리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오른 주먹을 앞으로 쭉 뻗어보십시오. 팔이 나가면서 허리도 따라서 회전을 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왼 주먹을 쭉 뻗어보면 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돌아간 허리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이용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레프트 더블은 다릅니다. 왼 주먹을 내지른 뒤 의식적으로 주먹을 제자리로 되돌린 뒤 다시 뻗어야 합니다. 양손을 번갈아 뻗는 것보다 동작이 하나 더 들어가고 힘도 더 필요합니다. 게다가 주로 쓰는 오른손이 아니니 펀치력도 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그만큼 더 훈련을 하는 수밖에는요.
죽을힘을 다해 훈련한 당신은 레프트 더블을 제법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필살기를 써서 상대방을 때려눕힐 일만 남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레프트 더블은 상대의 방심과 더불어 실제 빈틈을 노려서 사용해야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쏟아지는 주먹을 견디고 또 견뎌야 합니다. 몇 번의 다운을 경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고 또 일어서다 보면 분명 기회가 올 것입니다.
예전에 본 영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여기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던 32살의 여주인공은 우연히 동네 체육관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의 복싱 경기를 보게 되고요. 남자는 열심히 싸웠지만 얻어맞기만 하고 패배하고 맙니다. 다른 이들은 더럽게 못 싸웠다고 욕을 했지만 그녀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서로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모습을 보고요. 그렇게 그녀는 복싱에 입문을 하게 되고 죽을힘을 다해 훈련을 합니다.
체육관의 관장은 계속해서 말렸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고 프로가 되었고 첫 경기까지 치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는 날이 온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상대가 너무 강했습니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했다고 해도 32살에야 복싱을 시작한 그녀가 어릴 때부터 복싱을 해온 상대를 이길 리는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얻어 맞고 다운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만 더 다운이 되면 경기를 끝내겠다는 심판의 말도 그녀의 투지를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웅. 상대의 왼 주먹을 그녀가 몸을 숙여 피했습니다. 부웅. 연이어 날라온 상대의 오른 주먹도 피했습니다. 상대의 오른쪽 옆구리가 빈 것을 본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왼 주먹을 날렸습니다. 퍼어억. 상대의 옆구리에 그녀의 주먹이 적중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왼 주먹을 다시 거둬들인 그녀는 다시 상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립니다. 퍼어억. 또다시 명중입니다.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연습했던 레프트 더블이 상대에게 멋지게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지난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여기며 무기력하게 살던 그녀에게도 드디어 빛나는 봄날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프로 데뷔 경기에서 멋지게 승리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의 레프트 더블에도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거센 반격을 해왔고 그녀는 또 다운이 되었고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행운은 준비에 기회가 더해진 것이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훈련해서 '준비'를 마쳤습니다.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 레프트 더블을 성공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자신을 쓰러뜨린 상대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합니다.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그녀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정말 행운이었구나 하고요. 세상의 기준으로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때는 그녀는 분명 패배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조금의 후회나 미련도 없이 홀가분한 모습이었습니다.
무기력한 인생을 살고 있던 그녀가 열중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온 힘을 다해봤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운이고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인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상 사람들은 결과만을 보기 때문에 대단한 것을 내어놓지 않으면 실패자라 여기며 우습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패배자로 기억할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이 끝내 성공시킨 레프트 더블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 훈련해온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복싱 경기에서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인생이란 경기에서는 이미 승리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각자의 레프트 더블을 찾아 온 힘을 다해 갈고닦은 뒤 멋지게 성공 시킵시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운명이란 놈을 꼭 안아주며 말합시다. 고맙고 또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