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조무사는 무슨
유튜브에서 정형돈과 김제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정형돈은 말했다. 자신은 딱 2번 강연을 한 뒤로 그만두었다고. 왜 그만두었냐고? 대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던 도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개그맨 지망생들이면 모를까, 내가 전혀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 이들에게 과연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잘못된 조언으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정형돈의 고민에 김제동은 대꾸했다. 대중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다 자기들 알아서 판단하지, 우리가 시키는 대로 영향받는 존재들 아니라고. 김제동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정형돈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단 한 사람이라도 영향을 받을까 봐서요."
김제동은 또 반박을 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뿐이고 판단과 결정은 각자가 하는 것이라고. 물론 김제동의 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마이크를 들고 대중 앞에 서서 많은 강연을 하는 사람이 내뱉기에는 조금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싶었다.
인터넷에 한참 떠돌던 김제동과 서장훈의 인생 조언이란 영상을 본 기억도 떠올랐다. 김제동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사연자에게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취직이 안 되는 것은 네 탓이 아니라 사회 탓이란 위로를 건네면서.
반면에 서장훈은 김제동식 위로를 매우 싫어한다고 했다. 끈질기게 노력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것이 인생인데 사람들에게 무책임하게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고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김제동 보다 정형돈과 서장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제동이 틀렸다거나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팩폭이 사람을 정신 차리게 하고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맞다 보면 주저앉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는 김제동식 무조건적인 위로가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저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서점에 있는 수많은 책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다 괜찮다는 말의 달콤함만 좇다 보면 결국 더욱 쓰디쓴 현실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적당히 균형을 잡도록 하자.
다 괜찮다는 김제동의 말만 믿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던 취업 준비생은 1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여전히 백수였다. 그가 우연히 길을 가다 김제동을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말할 것이다. "제동이 형, 형이 다 괜찮다고 해서 제 인생 망했어요." 김제동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꾸할 것이다. "아니, 판단은 니가 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내 탓이야."
문득 김제동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인 헌법조무사가 떠올랐다. 들을 때마다 참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강연에서 헌법을 자주 인용해서 붙은 별명이 아닌가 싶은데 조금 부적절한 것 아닌가 싶다. 간호조무사는 이론 공부와 병원 실습을 통해 취득하는 어엿한 자격증이고 직업이다. 그런데 그냥 헌법을 개인적으로 조금 공부한 김제동에게 헌법 조무사란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를 높여주는 것 아닌가? 들을 때마다 김제동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간호조무사들에 대한 비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