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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9. 2023

아이에게 편견이 심어지는 순간

"안돼~ 에이~ 더러운 거야. 아주 더러운 거야."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나무라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더러운 것인가 싶어 지켜봤더니 손녀가 은행나무 열매를 잔뜩 주워온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한 할아버지의 꾸짖음에 손녀는 주워온 은행나무 열매를 바닥에 죄다 버리고는 울상이 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예쁜 주황빛 열매를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그 예쁜 열매를 혼자만 보기 아까워 기쁜 마음으로 할아버지에게 가져왔을 것이고. 하지만 할아버지의 반응은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명 동글동글 귀여운 열매를 주워왔는데 더럽고 몹쓸 것을 주워온 사람 취급을 해서 얼마나 놀라고 서운했을까. 


아이에게 또 하나의 편견이 심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이제 다시는 은행나무 열매를 줍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속에서 주황빛 예쁜 열매는 사라지고 냄새가 고약하고 아주 더러운, 몹쓸 것만 남았기 때문이다. 훗날 성인이 된 아이는 출근길에 땅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들을 피하며 생각할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냄새나고 더러운 열매를 맺는 나무를 가로수로 심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도대체 공무원들은 떨어진 은행 열매를 빨리빨리 치우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느냐고.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더럽고 몹쓸 것이란 생각부터 드는 그녀는 아마 노오랗게 물든 은행나무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술안주로 그만인 쫄깃쫄깃한 식감의 은행 꼬치의 맛도 모르고 살 것이고. 


"누구야~ 예쁜 주황빛 열매를 주워왔네~. 그건 은행나무 열매인데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구워 먹으면 맛이 참 좋단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니깐 조심해야 해."라고 부드럽게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아이가 울상이 되는 일도, 은행나무를 미워하는 어른이 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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