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유튜버의 설악 그란폰도 영상을 보았다. 그란폰도가 뭐냐고? 이탈리어어로 위대한 경주, 크게 타기란 뜻으로 장거리 자전거 이벤트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회라고 하지 않고 이벤트라고 하는 이유는 그란폰도의 경우 기본적으로 비경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줄 세우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 취지가 약간 변질된 것처럼 보이지만.
영상 속 그는 힘겹게 업힐(오르막)을 오른 뒤 시원하게 다운힐(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을 조금도 즐기고 있지 못했다. 왜 그랬냐고? 내려간 그 길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 고개는 길이가 20km에 달하는 구룡령이었으니. 구룡령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용이 굽이굽이 승천하는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아홉 마리의 용이 쉬어가던 곳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보통 고개가 아니란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그는 처음 구룡령을 오르면서 길고 긴 업힐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20km의 다운힐을 편하게 내려가면서도 다시 올라올 걱정을 했다. 그리고 20km의 업힐을 오르면서 또 괴로워했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다 괴로우면 도대체 언제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일은 평일대로 힘들어하고 휴일은 다가올 평일을 생각하느라 만끽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어리석은 현실이란 말인가.
평일은 평일대로, 휴일은 휴일대로 즐겁게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도무지 힘들다면 평일에는 휴일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휴일에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차선이라도 택해야 하지 않을까.
총거리 633km의 국토 종주를 하는 다른 이의 영상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는 대장정이다. 100km 정도가 남았을 때 그는 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제 겨우 100km밖에 남지 않았다며, 내일부터 다시 출근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겨우 100km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의 표현이 낯설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다른 자전거 유튜버들은 완주를 목표로 해서 아직 100km나 더 가야 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밭을 벌써 반이나 갈았다고 좋아하던 이와 이제 겨우 반 밖에 못 갈았다고 한탄하던 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오르막을 오르면서도 내리막을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듯이 월요일에도 토요일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이 자전거를 타면서도 어떤 이는 속도, 거리 등에 집착하느라 본연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다른 이는 순간의 즐거움을 천천히, 오래 즐기고 싶어 하고.
나를 비롯한 보통의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구직을 할 때는 그렇게 일을 하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인 지금은 죽도록 놀고 싶어 한다.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은퇴를 한 뒤는 어떠한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기 일쑤이다. 파이어족의 장점을 설파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나 경제적 자유와 이른 은퇴를 외쳤던 그들은 막상 그것을 이루고도 여전히 여러 가지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그럴 거면 굳이 그렇게 이른 은퇴를 꿈꿀 필요가 있었을까.
언제까지 지금 나에게 없는 것, 당장 이룰 수 없는 것들만을 부러워하며 살 것인가. 없을 때는 그렇게 간절하던 것들이 막상 갖고 난 뒤엔 별것 아니란 사실을 이미 수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