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적면 공포증은 무엇인가요?
할머니와 단 둘이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는 20대 여자의 글을 읽었다. 처음 든 생각은 아니, 20대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나? 근로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가 아닌가 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서류를 제출하여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매달 나라에서 나오는 80만 원 정도의 돈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문득 미움받을 용기란 책에서 읽었던 적면 공포증을 앓고 있던 소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적면 공포증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안색이 붉어지는 것을 고민하는 신경증이다. 그녀는 말했다. 적면 공포증 때문에 도무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녀가 고백을 할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적면 공포증 때문이 아니라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적면 공포증은 거절을 당할 위험을 없애주는 안전 장치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들은 누구나 적면 공포증과 비슷한 것들을 안고 살아간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가난, 못생긴 얼굴, 몸에 생긴 흉터, 학벌, 나쁜 시력, 평발 등등.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이러저러한 것들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경험들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사실 그것들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달아야 비로소 적면 공포증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나는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수영을 하지 못했다. 왜 여태 수영을 배우지 않았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빠서 수영을 배우기 어려웠다는 핑계를 대곤 했다. 대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줬는데 도수 수경을 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또 양쪽 눈의 시력 차이가 심해 도수 수경을 맞출 때 많은 비용이 들어서 부담스럽다고 변명하곤 했다. 제대로 알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라도 수영을 꼭 배워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아들에게 직접 수영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몫을 거들었고. 그렇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나쁜 시력은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흐릿하게 보여도 수영을 배우기에는 충분했고 물속에서는 의외로 더 잘 보였다. 딱히 봐야 할 것이 없기도 했고.
그렇게 며칠 수영을 배우다가 도수 수경을 사야겠다 싶어서 동네 안경점에 갔다. 그런데 도수 수경의 가격은 의외로 별로 비싸지 않았다. 3, 4만 원 정도 했으려나. 물론 내 시력에 딱 맞춘 것은 아니었고 대충 비슷한 도수의 기성 렌즈를 조합해서 사야 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자유형, 배영, 평영까지 즐겁게 수영을 배운 뒤 접영에 들어갈 때쯤 수영장을 그만두었다. 그만둔 이유는 확실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데 아마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했던 것 같다. 접영이 멋있기는 하지만 물도 많이 튀기고 힘도 많이 드니 굳이 배우지 않아도 좋겠다 여겼던 모양이다.
아이가 조금 자란 뒤 함께 자유 수영을 하러 다니면서 직접 자유형을 가르쳤다. 그렇게 세, 네 번 함께 수영장을 갔을 때였을까. 아이는 어설프지만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자유형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눈이 나빠서 수영을 배울 수 없다는 핑계를 계속 대고 있었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