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13. 2023

사람이 싫은데 사람이 많은 곳을 가는 이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가끔씩 그들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정말로 찰나이고 모자 그늘 아래에서 빛나는 한 쪽 눈만 보일 때가 많긴 하지만 서로를 인식하기에는 충분한 순간이다. 푹 눌러쓴 모자에 스스로를 감춘 채 몰래 타인을 구경하는 재미를 누리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을 알아챈 나란 존재로 인해 적잖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곤 한다. 

그런 그들을 보면 양가감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양가감정은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싫고 사람을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다른 사람이 궁금한 것이다. 사람이 싫어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사람이 좋아 집 밖으로 나온 것이고. 내 말이 정말인지 궁금하다면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길 바란다. 분명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과 마주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흔히들 집순이, 집돌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할 것이라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낯선 사람과 쉴 새 없이 교류를 해야 하는 자리라면 분명 싫어하겠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아무도 없고 억지로 누군가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면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이 내향인들이다. 

사람이 북적대는 카페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는 내향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는 작은 교회보다, 조용히 다닐 수 있는 대형 교회를 선호하는 내향인들이 많다는 것도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고.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뭐긴 뭐겠는가. 외로움과 그리움 때문이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수없이 상처받고 지친 이들은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홀로 시간을 보내보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 그래서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피하되 때때로 사람이 많은 카페 같은 곳에 가서 인간 에너지를 충전하고 오는 것이다. 

인간 에너지가 무엇이냐고? 우선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퍼스널 스페이스는 말 그대로 개인 공간을 뜻하는 표현이고 낯선 이가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면 불편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반경 50cm~1m 안에 낯선 이가 들어오면 사람은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퍼스널 스페이스의 개념만 생각하면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을 편안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데 그게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반경 50cm~1m 안에 낯선 이가 들어오면 불쾌하지만 반경 1m 밖에 아무도 없는 상황 역시 유쾌하지 않다. 대략 1~5m 안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은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편안함을 느낀다. 직접적인 스킨십보다는 못하지만 왠지 모를 위안을 얻기도 하고. 유선 충전보다 조금 못한 무선 충전이라고 보면 되려나. 사람은 그렇게 가끔씩 인간 에너지를 충전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어있는 것이다.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살고 있지 않느냐고? 사실 그들에게 외톨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돌봐주는 다른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방콕족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람과 세상이 싫어 방 안에 콕 틀어박힌 그들은 정말로 혼자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온라인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신을 돌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해져 오는 미량(微量)의 인간 에너지, 이 두 가지가 그들을 생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 에너지라는 말은 내가 적당히 만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