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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모남의 이유

못남의 이유

'아, 뭐 하는 거야.'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어도 꼼짝하지 않는 앞 차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새를 못 참고 또 핸드폰을 보거나 딴짓을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가려진 앞 차를 지나 절뚝거리며 길을 건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경적을 울릴까 잠깐 고민했는데 안 하길 정말 잘했다. 당연히 가야 할 때 가지 않는다고 짜증을 냈는데 그에게는 가지 못할 당연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뻔히 눈에 보이는 것도 못 보고 놓치는 것이 사람인데, 어찌 수많은 속 사정을 지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예전에는 이해에 이해가 더해진 것이 사랑이라 믿었기에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오늘과 같은 실패를 숱하게 경험한 뒤 결국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불어 이해가 사랑의 필수 조건이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바라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진짜 사랑이듯이, 머리로 이해되지 않아도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었다.


살다 보면 유독 모난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예전에는 남들을 찔러서 상처 내고 아프게 하는 그들의 뿔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궁금해하곤 했다. 아마도 심술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심술액이 동굴의 종유석과 석순처럼 오래도록 쌓이고 쌓여서 자라난 것이 아닐까. 절뚝거리는 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앞 차를 오해했던 것처럼 이 역시 나의 오해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뿔은 숱하게 패이고 패인 상처 뒤에 남은 부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남은 부분도 더 뾰족하고 기다란 형태가 되었으리라.


설령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이해하거나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모난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뾰족한 부분이 상대를 향하지 않게 방향을 바꾸거나 끊임없이 갈고 또 갈아서 뭉툭하게 만든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모든 것을 상처 때문이라 여기며 뾰족한 뿔을 여기저기 찔러대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가 아닐까. 자꾸만 자신의 모남, 아니 못남을 드러내는 이들을 상대할 때는 평정심만 잃지 않으면 된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그들보다 훨씬 고수인 우리는 투우사가 황소의 공격을 피하듯 여유롭게 뿔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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