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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놀아야 하는 이유

인생의 무의미를 놀이로 채우기

취미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친구 A가 자기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친구가 산에 가는 걸 본 적이 없는 친구 B와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산에 갔는데?"


친구 A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한다.


"한 몇 년 되었지."


다른 친구 C는 성당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정말로 그냥 성당에 가는 것, 성당에 있는 카페에 가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정작 미사는 한 번도 드려본 적이 없다고 했다.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시간과 마음, 돈을 내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친구 A는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내어준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마음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충분하지 않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연락을 주고받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서로를 위해 돈도 써야 한다. 친구 C는 성당에 가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사실 핵심인 미사는 빠져 있었다. 성당이란 공간에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사는 이들이 많다. 아니 좋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경험이든 자꾸만 마음이 가고 시간과 돈을 내어 주게 되는 것.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다.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에서 베테랑 악마인 스크루 테이프는 초보 악마인 조카 웜우드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아무 사심 없이 좋아하는 대상을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의 정교한 공격 방식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사람이든 음식이든 책이든 환자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은 버리게 하고, 그 대신 '제일 좋은' 사람, '적합한' 음식, '중요한' 책들만 찾게 만드는 일에 늘 힘쓰거라."


악마들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절망하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절망한 이들이 목숨까지 버리게 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대성공이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심 없이 그저 좋아하는 무언가,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악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떠오르지 않거나 없는 것 같다면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분명히 가슴을 뛰게 하고 그저 좋았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제일 좋은', '적합한', '중요한' 것들만 찾도록 오래도록 교육받고 강요받았기에 잠시 동안 '그저 좋은' 것들을 잊고 살았을 수 있다. 


일의 반대말은 휴식이 아니라 놀이라고 한다. 사람은 결코 일만 하며 살아갈 수 없다. 일과 휴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저 좋은 것들, 놀이가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실제로 하면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읽은 '니체의 마지막 선물'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니체는 말한다. 살아가는 일에 궁극적인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무의미를 놀이로 채워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여기서 말하는 놀이는 다른 목적이나 의미가 없으며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재밌어서, 좋아서 그냥 하는 것들이다. 남들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는 시간 낭비, 돈 낭비로 보이는 것들도 적지 않으리라.


나의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겨 하곤 했다. 그런데 몇 년 전 불쑥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다. 여기에 쏟을 시간과 노력을 어학 공부나 뭔가 쓸모 있는 일에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으로 소중한 시간을 삭제 당한 뒤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곤 할 것이다. 지난날의 나에게, 오늘도 후회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결코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고. 삶의 무의미를 채워가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말이니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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