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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글을 편하게 써도 되는 이유

참 재밌다. 아침에 제목만 써두고 이따가 글을 써야지 했는데 그 사이에 쓸 글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한 이웃분이 '예쁘다는 말이 듣기 싫은 이유'라는 글을 썼는데 거기에 반박 댓글을 단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는 예쁘다는 말이 좋지 않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쓸 때는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이었다. 굳이 댓글로 남겨야 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소리였다. 이웃분은 대답하셨다. 자신도 예쁘다는 말을 잘 하지만 하나의 글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흐려질까 봐 여러 갈래를 담을 수 없었다고. 아! 나 역시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는 것이 싫어 실제 내 마음보다 더 단호하게 표현한 적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간과하고 말았다. 내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면서, 상대에게는 일일이, 제대로 표현해 줄 것을 요구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떤 이가 댓글을 남겼다. 

"글이 비어 있어서 참 좋네요. 덕분에 생각을 할 수 있어서요." 

처음 그 댓글을 보고는 칭찬으로 받아 들이질 못했다. 

'뭐야. 지금 글이 허술하다는 거야? 비어 있다니? 어디가?' 

라는 식으로 삐딱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난 지금은 그것이 정말로 칭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독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그래서 이제는 글을 쓸 때 편하게 이곳저곳을 비워둔다. 물론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들은 처음 쓰는 글은 무조건 길게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왜냐하면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있는 것을 줄이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답은 없으리라. 각자의 취향대로 선택하면 될 일이다. 


조금 비어 있어도 좋다는 마음가짐은 글쓰기뿐 아니라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인정 욕구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어떻게든 해명하고자 했다. 장문의 편지를 쓴 적도 있었다. 사실 최근에도 부모님께 편지라도 써야 하나 생각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크게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지난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설령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자기 자신도 자꾸만 들여다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힘든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니 남들이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억울해 하며 길이 길이 날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이 인간이란 사실을 인정하면 될 일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이 부족한 글을 읽고도 그 안에 담긴 보석 같은 마음을 바라보는 이가 있고 꽉 채운 글에서도 부족한 하나를 찾아내서 미움을 드러내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열 명이 있으면 나를 그저 미워하는 이가 둘, 별생각 없는 이가 예닐곱, 그냥 좋아해 주는 이가 한 둘이라고 했다. 인생도, 글쓰기도 나를 좋아해 주는 한 둘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하리라. 옛날 초콜릿 광고의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이를 바라보며 살도록 하자. 온 동네에 대자보를 붙이며 사는 것은 이제라도 그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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