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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스타벅스에 종종 가는 이유

원래는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커피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던 탓도 있고 예전에는 가성비를 지금보다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십여 년 전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스타벅스를 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은 사치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된장남, 된장녀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다. 그 누구도 정확한 어원과 뜻을 모르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다른 이들의 소비 행태를 그렇게 비판할 필요가 있었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대놓고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동조하는 쪽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당시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결국은 부러움 때문이었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턱턱 사 먹는 이들의 재력이 부러웠고 얼마 되지 않는 벌이와 용돈으로도 자신을 위한 지출을 과감히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러웠다. 늘 부족한 용돈을 충당하고자 시험 기간에도 알바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누군가를 향한 부러움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에너지원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미움을 낳는다. 그래서 그 시절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이들을 비판한 것이다. 어떤 이들의 미움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망하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옹졸한 바람과는 달리 스타벅스는 이십여 년간 승승장구했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의 세상 보는 눈은 이렇게나 어둡다. 그러니 대부분의 개미들이 주식 시장에서 죽을 쑤는 것 아니겠는가. 스타벅스에서 사치를 한다며 욕할 것이 아니라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했어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된장남, 된장녀란 표현은 사라지고 스타벅스에 가는 것을 사치라 여기는 이들도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스타벅스보다는 더 저렴한 이디야 같은 곳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삶의 관성을 바꾸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그러다 몇 년 전 뉴욕 여행을 다녀온 뒤 스타벅스를 종종 가게 되었다.


뉴욕에는 스타 벅스가 참 많았다. 맨해튼의 경우 거의 한 블록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가격도 다른 가게들에 비해 싼 편이었다. 지금은 물가가 올라 꽤 비싸졌지만 그때는 한국과 비교해도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여행 기간 내내 자주 이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빠지고 말았다. 스타벅스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분위기까지 파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어쩌다 보니 뉴욕에서는 라테를 주로 마시게 되었다. 부산 사투리인 뭐라카노와 비슷하게 발음해야 하는 어메리카노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아니면 끝소리에 공기 반 소리 반을 넣는 라테헤~의 발음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야하게 들리기도 했고. 


사실 라테를 즐겨 마시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맛이었다. 미국 스벅에서 파는 라테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고소하고 맛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맛을 기대하고 라테를 마셨는데 너무 싱거워서 점원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이거 라테가 너무 싱거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샷을 추가하면 되지 않을까요?"

점원이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샷을 추가해도, 우유를 더 넣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원두는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이리 맛이 다를까 고민하다가 답을 찾았다. 스벅의 라테가 다른 브랜드의 라테보다 맛있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더 비싼 서울 우유를 쓰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미국 스벅의 라테가 한국 것보다 더 맛있는 이유도 우유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 아마 미국소들이 한국소들보다 더 고소하고 진한 우유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 블루 보틀의 라테가 한국 지점의 것보다 더 고소한 것도 설명이 된다. 


그렇게 뉴욕에서 라테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라테를 손에 들고 나가려는데 아들이 갑자기 너구리 모양의 쿠키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점원에게 라쿤(racoon, 미국 너구리) 쿠키를 달라고 했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사는 너구리는 영어로 라쿤 독(racoon dog)이다. 미국 라쿤은 꼬리에 줄무늬가 있고 한국에 사는 너구리의 꼬리에는 줄무늬가 없다. 주문을 한 뒤 쿠키 값을 지불하려고 하는데 점원이 한사코 거부를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얼마 전 다른 스벅에서 이름을 못 알아듣는 척하는 인종차별을 당한 뒤라 긴장이 되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점원이 샬라샬라 길게 말을 했다.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이거 별것 아니야. 그냥 네 아들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곧 핼러윈이기도 하니 선물로 주고 싶어."


충격이었다. 스벅에서 공짜로 쿠키를 주다니. 그것도 단골도 아닌 처음 온 여행객에게! 아들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가슴속에 따뜻함이 차올랐다. 근처 브라이언 파크에 앉아 쿠키를 먹으면서 아들에게 말을 했다.

"점원 아저씨가 너가 귀여워서 선물로 주신 거래." 

"진짜?" 

아들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를 떠올리는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점원인 줄 알았던 그 흑인은 사실 점장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개인 돈으로 채워 넣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삥땅을 친 것일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그의 얼굴, 몸짓, 표정, 말투가 여전히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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