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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글쓰기와 인생이 괴로운 이유

아무거나 막 써도 된다는 이주윤 작가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똥을 싸지르다 보면 개똥밭이 될 것이고 거기서 언젠가 희망의 새싹이 돋을 것이란 말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덕분에 오늘도 부담 없이 똥을 싸지르고 있다. 멍멍.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작가 중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이다. 뻥이다. 정말로 일본에서 가장 많은 책을 쓴 작가는 따로 있지만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만을 따졌을 때는 그의 것이 가장 많다. 참으로 대단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는 에세이를 쓸 때 자신의 글을 졸문이라 말할 때가 많다. 처음에는 너무 겸손을 떠는 것 같아 거슬렸는데 일관된 그의 태도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겸손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에 그가 완벽주의자였다면 어땠을까? 스스로 명문이라 느낄 때까지 글을 고치고 또 고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으리라.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한다. 나 같은 게 무슨 글이야. 그래도 용기를 내서 글을 쓴 뒤 발행해 본다. 의외로 반응이 괜찮다. 신이 난 그는 또 글을 쓰지만 이번에는 반응이 영 별로다. 속을 후벼파는 악플 하나에 얼른 글을 지워버린 뒤 생각한다. 애초에 글 같은 걸 쓰는 게 아니었다고. 아마 절반 정도는 이렇게 글쓰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는 졸문일지언정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 졸문이 쌓이고 또 쌓이는 그 과정에서 명문이 탄생할 수도 있고 수없이 고친 졸문이 명문으로 탈바꿈되기도 한다. 


또 위로가 되는 사실이 있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란 사실이다.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던 중이었다. 어느 글에서 그가 도대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대한 작가인 김훈 역시 글을 쓰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니, 얼마나 반갑고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소설가 김연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1회 만에 연재를 포기한 적도 있었고(결국 다시 연재가 재개되긴 했지만), 자신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며 자책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글쓰기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원래 괴로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괴로움의 대부분은 사실 글쓰기 자체가 아니라 마감 시한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대다수의 작가와는 달리 글쓰기가 괴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얄미운 이가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그는 주로 일본이 아닌 해외에서 생활을 하며 매일 아침 글을 쓴다. 스스로 정해 놓은 분량을 채우고 나면 나머지는 온전한 자유 시간이다. 따로 정해진 마감 시한도 없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다. 참 부러운 삶 아닌가? 


하지만 사실 하루키처럼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의 마감시한이 딱 정해져 있지 않지만 어찌 보면 그는 매일 같이 스스로 마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매일이 마감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는 괴로워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는 똑같은 인생일지라도 그것을 선택한 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타인의 강요인지에 따라 삶의 만족도는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누가 낳아달라고 그랬어?", "이런 거지 같은 집에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어"라며 반항을 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떠올리면 인생이 괴로운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사춘기 때 지랄발광을 하는 것이냐고?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희가 좋은데 그녀는 철수가 좋다고 한다. 나는 철수에 비해 키도 작고 못생겼고 집안 형편도 별로이다. 이게 다 누구 탓이겠는가. 그러니 부모에게 지랄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아이가 커서 지랄을 하면 나는 더욱 지랄을 떨며 목놓아 외칠 것이다. 


"너는 아빠보다 잘생겼잖아. 아빠는 훨씬 힘들었어.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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