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기 Jul 13. 2023

사오십춘기의 이유

흔히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빠르고 거센 바람, 무섭게 밀려오는 큰 파도에 비교될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격해지고 행동 역시 거칠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사춘기가 찾아오는 시기와 그 모습은 다르기 마련이다. 


애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기사들이 종종 나온다. 그들의 나이를 보면 의외로 4,50대가 많고 심지어 6,70대도 있다. 예전에는 그런 기사를 보면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하곤 했다.  


사춘기의 원인을 성호르몬의 증가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십 대, 오십 대가 되어서 찾아오는 또 하나의 사춘기인 사오십춘기 역시 성호르몬이 그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시기에 여성들은 폐경을 하게 되고 남성들의 정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그러니 그나마 성호르몬이 높을 때 조금이라도 성능력을 활용하도록 우리의 뇌가 부채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 


사오십춘기의 또 하나의 원인은 죽음을 많이 접하는 시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50대가 되면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주변 친구들의 부고 소식도 종종 듣게 된다. 여태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무겁게 와닿는 것이다. 자신 역시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나온 삶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내 마음대로,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게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무례해지거나 성적으로 타락하는(혹은 솔직해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아닐까. 정말로 흉하게 나이 든 이들을 보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사람은 안 바뀐다. 젊었을 때 양아치가 늙은 양아치가 되었을 뿐이라고.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살짝 수정을 하고 싶다. 젊을 때 양아치는 늙어서 쌩 양아치로 업그레이드된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내용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부모의 장례식이 끝난 후 섹스를 하는 부부가 많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음을 자주 접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섹스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전자는 약간 엽기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왜 그런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때보다 조금 더 죽음에 가까워진 나이가 된 덕분이리라. 죽음과 성이 연결되는 것이 언뜻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 성은 결국 태어남, 즉 삶과 연결된 것 아닌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는 라틴어이다. 하지만 이 말은 어디까지나 죽음에서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는 2,30대에게 더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중년들은 이미 많은 죽음을 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멘토 모리는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젊은 장군에게 늙은 노예가 말한 것이란 설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교만해지고 나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말이었던 것이다. 


남자의 머릿속 일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는 섹스가 가득하다. 그 이후 취업과 결혼, 육아, 승진 등을 신경 쓰느라 조금 소홀해진다. 그러다 4,50대가 되면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정력은 흔들리는 시기가 온다.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끝은 결국 죽음이란 자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고자 다시 머릿속 섹스의 비중이 올라가게 되는 것 아닐까. 


2,30대 때는 그런 이들을 보고 나잇값을 못하고 주책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들은 나잇값을 제대로 하고 있던 것이다. 중년 남성들, 그리고 그의 배우자들이 정력에 좋은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읽다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50대가 된 그는 명지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은 순수 미술이 아니라 만화였다고 했다. 그것도 노년들을 위한 성인 만화를 그리는 변태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를 보며 참 솔직하고 그 답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그가 힐링캠프에 나왔던 것도 떠올랐다. 그는 마이크와 방망이를 자신이 아끼는 물건으로 가져온 김제동에게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고 왜소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고 정신분석학적인 이야기를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웃는 한혜진에게 자신은 전문가로서 심리학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왜 그러냐면서 한국 사회가 이래서 문제라는 이야기도 했다. 너무 표리부동하다는 것이다. 한국 남자들이 낮에는 근엄한 척하다가 밤에는 유흥업소에서 온갖 짓을 다한다면서. 10년 전 그때는 그의 말이 너무 파격적인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40대가 된 지금은 훨씬 더 공감이 된다. 사오십춘기에 가까워진 덕분이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인이 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