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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그가 매일 술을 마시는 이유

J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신다. 늘 편의점에서 소주 두 병 혹은 막걸리 두 병을 사다 먹는데 항상 모자라서 몇 번 더 다녀온다고 한다. 그의 얼굴을 익힌 편의점 알바가 어차피 다시 오실 거니 한 번에 많이 사가라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처음에는 나름 주량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가끔씩 시골 고향집에 내려가는데 그때는 근처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잔뜩 사다 놓고 먹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아마도 외로워서 그럴 것이다. 두 딸은 결혼을 해서 집을 나갔고 막내아들인 J와는 말도 잘 섞지 않을 정도로 서먹하다. 게다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늘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오죽하면 J가 부모님의 부부 싸움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겠는가. 


그래서 그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아내에게는 술이 떨어져서 사러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고. 편의점 점원과 나누는 몇 마디 말이, 바쁘게 오고 가는 거리의 사람들에 섞여 있는 시간이 그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래. 여러 번 술을 사러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외로움 때문이라 치자. 그토록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한 노인이 있다. 그의 전동 휠체어 앞 바구니에는 늘 빈 커피컵이 3,4개 담겨있다. 매일 같이 커피 컵의 모양이 다른 것으로 보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커피를 사 먹는 모양이다. 게다가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늘 담배를 피운다. 처음에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중풍이 오고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왜 저렇게 몸 관리를 안 하고 살까. 


소설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다가 그 해답을 찾았다. 언젠가 그는 진폐증에 시달리고 있는 전직 광부들을 관찰했는데 대부분 보통 사람들보다 술, 담배를 많이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는 달리 그것을 한심하게 여기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생을 광산에서 열심히 일해온 대가로 결코 낫지 못하는 병을 얻은 그들에게, 그 누가 함부로 술,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한 심리 실험도 떠올랐다. 설문조사를 한 뒤 A 그룹에게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B 그룹에게는 노년에도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A 그룹은 B 그룹에 비해 몸에 안 좋은 정크푸드를 많이 먹었고 야채 주스 같은 것들은 덜먹게 되었다. 연필을 바닥에 쏟은 뒤 줍게 하는 실험도 했는데 B 그룹이 A 그룹에 비해 훨씬 많이 주웠다. 결국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사람이 건강을 더 잘 챙기고 선행도 하면서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J 아버지의 생일날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돼지갈빗집에 갔는데 입을 모아 그에게 이야기한다. 제발 건강 생각해서 술 좀 적게 드시라고. 그는 고기 한 점, 술 한 방울 입에 넣기도 전에 이미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다행히 냉랭한 분위기를 눈치챈 고기를 구워주던 점원이 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아버님~ 오늘 좋은 날이니 소주 많이 드시지 마세요. 대신에 몸에 좋은 복분자주 한 병 서비스로 드릴게요." 점원의 따뜻한 마음 덕분일까. 그는 기분 좋게 복분자주 딱 한 병만 먹고 일어설 수 있었다. 술에 취한 뒤 가족들에게 청승을 떠는 비극적인 패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J와 가족들은 눈치챘을까. 그에게 술 마시지 말라고 노래를 하는 것보다 그의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매일 술을 마시는 이유는 이미 가족 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앞으로도 영영 좋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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