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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 Jul 13. 2023

정신병에 걸리는 이유

정신질환은 대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없어서 발생한다.

심리학자 미셸 크로슬리



어느 책에서 이 문장을 읽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그와 동시에 몇몇이 떠올랐는데 평소에는 과묵하다가 술만 마시면 수다쟁이가 되는 이들이었다. 그냥 말이 많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했던 말을 하고 또 해서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른다. 이제야 그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토해내고 또 토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이 힘들어서 그랬구나. 살기 위해서 그랬구나. 


개중에 한 친구는 평소에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하곤 했다. 혼자인 지금의 삶이 충분하다는 그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랬던 그가 술에 취하자 딴말을 한다. 


"비혼주의? 그거 다 거짓말이야. 결혼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자기합리화하는 거지. 나도 그랬던 거고."

"그래? 혼자가 좋다면서?"

"좋은 점도 있지. 하지만 외롭고 무서울 때도 있어."

"외로운 건 알겠는데 무섭다고?"

"집이 너무 넓어서 혼자 있으면 무서워.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밤에 불을 끄지도 못하겠고"


친구는 올 초에 투룸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족한 공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참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남자 혼자 투룸에 사는데 공간이 왜 부족했냐고? 그의 취미생활 때문이었다. 원래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모으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하지도 않을 게임을 왜 사냐고, 돈 낭비, 공간 낭비 아니냐고 여러 번 그를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점 늘어나는 수집품을 진열하기 위해 책장을 하나씩 늘려가던 그는 결국 방 한가운데에도 덩그러니 책장을 놓고 말았다. 가끔씩 친구들이 놀러 와서 잠을 자던 방은 그렇게 창고가 돼버렸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모으는 이유는 결핍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을 잔뜩 먹음으로써 마음의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래보려는 이들도 있고. 근데 그렇게 해서 정말로 공허한 마음이 채워질까? 잠깐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쇼핑중독에 빠지고 점점 더 살이 찌는 것이다. 


다음날 술에서 깬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묵한 상태로 돌아왔다. 자신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억지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꽤나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정말로 잘 살고 있다가 취기 때문에 감정 조절이 잘 안될 때만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자신이 튀어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부쩍 겁과 외로움이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나이 때문이 아니라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 것이 원인이다. 전에 살던 곳은 본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어머니가 수시로 오고 가며 그를 챙겼다. 바로 근처에 그와 마찬가지로 혼자 살고 있는 대학교 동창도 있었고. 하지만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어머니가 전처럼 자주 올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친구는커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란 사실이 그의 외로움을 더욱 깊게 했으리라.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진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유튜브나 티비를 보며 보내게 되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홀로 잠을 청하는 것도 무서운 지경에 이른 것 아닐까? 그에게, 그리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익명으로 인터넷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마음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외로움과 공허함, 두려움에 시달리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표현적 글쓰기를 통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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