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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May 31. 2024

존재 늘이기

영원을 향하여

진흥왕이 남긴 비석이 있다.
헤밍웨이가 쓴 글들이 있다.
어쩌면 좋을까.
상상을 해 보자. 인간은 영원을 꿈꾼다. 내가 죽더라도 내 글을 남기고 죽고 싶다. 이것은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갑질을 하는 사람을 보아도 동의는 하지 않지만 이해는 간다. 그렇게 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을 짰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어떤 경험이 쌓이면 저런 멍청한 짓을 하도록 부추길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이해는 가는 것이다. 내가 똑같은 상황이 되면 다를 것 같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과거에 그와 내가 영혼이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똑같이 그 시간을 지나니 똑같이 행동하는구나 하는 이해를 나중에 죽고 나서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이해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손을 남기고 예술 작품을 남겨서 영원히 내 존재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언제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어지는 것은 이어지는 것일 뿐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태양계는 앞으로 50억 년 정도면 소멸한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태양계가 아니라 태양계 내부의 생태계이다. 지구뿐 아니라 어디에 생명이 있었더라도 태양이 그렇게 급변하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전에 탈출해서 문명을 이어간다는 보장이 있으면 우리 문명에 뭔가를 남기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하면? 마치 동굴에 멋진 그림을 남겼지만 동굴이 무너지면서 현대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바닷속에 가라앉은 어떤 동네에 살던 크로마뇽인이라면? 혹은 전 세계 누구라도 내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작가가 되었지만 내가 생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다면?
나는 그 모든 아이디어의 최종적인 결말이 혈연중심주의라고 생각한다. 왕실의 핏줄, 가문의 핏줄처럼. 서양에서 후세를 잇지 않는 수도과 사제의 삶이 크나큰 희생이라고 간주한 것도 그 아이디어의 연장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영원히 뭔가로 남기고 싶은 욕망이 결국은 기나긴 철학적 싸움과 고민 끝에 '모든 것은 단지 연명일 뿐이다'라는 결론 탓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만든 것은 너무나 약하다. 이집트의 오래된 건축물 또한 억년이 지나 맨틀 가까이까지 가라앉고 나면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문명 또한 몇억 년동안 묻혀버린다면 새로운 생물이 지능을 아무리 높이 가진다고 해도 증거 없는 문명을 상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영원을 꿈꿀 권리가 없다. 영원에 압도될 수는 있지만 영원해 뭔가를 하겠다는 상상은 오히려 그러기 위해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에 대한 생각에 기가 죽어 버릴 수밖에 없다. 당장 우리 문명조차 그렇게 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무언가를 영원히 남기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혈연이라도 남기는 것이 아닐까? 나라를 세우더라도 당장 나의 혈연이 다스릴 수 있는 것 외에 나라 자체의 영속은 보장할 수 없으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는 눈앞에만 집중하고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며 간신히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도 지진이 나지 않는 기적 속에 살아내지만, 영원의 차원에서 우리가 남길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죽고 난 뒤 한순간의 연명만을 희망할 뿐이다. 그러니 얼마나 슬픈 존재들인가!
나는 슬픈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슬픈 존재들이다. 서로에게 기대어 서로 조금이라도 오래갈 수 있을 것처럼 위로의 말을 건넨다. 당장 오늘이 끝이 아닌 것처럼 1년, 5년, 10년 계획을 세우며 당장보다 오래 살 것처럼 서로에게 확신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길지 않고 우리의 문명 또한 아무도 얼마나 갈지 알지 못한다. 우리의 일생동안 굳건했던 문명이지만 우리가 마지막 세대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문명의 끝을 본 사람은 산 자중에 아무도 없지 않은가!
내가 글을 쓰는 것 또한 내 인생보다 단 1초라도 더 살아남는 뭔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글을 가지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생전에는 좋겠지만, 나의 죽음 전에 잊혀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의 톱니바퀴로 살더라도 글을 쓰며 산다면 괜찮은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내 뒤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좋다면, 글도 쓰지 않으면서 회사의 톱니바퀴로 살아도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 버는 돈 외에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일 테다. 내 글보다 내 컴퓨터가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영원에 조금 더 가까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글뿐이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영원을 염두에 두고 생산하는 제품이 아니다. 내 글은, 영원을 두고 수없이 생각한 결과들이다. 영원히 존재한다면 컴퓨터는 자격이 없다. 내가 아무리 내 글보다 컴퓨터가 더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하더라도 감히 내 글보다 생명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다. 생명의 글. 시간을 거스르는 글. 내가 창조자다. 그 끝을 보지 못하고 죽을 창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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