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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05. 2024

글쓰기, 결국 또 기다림의 문제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회식문화였다. 억지로라도 술을 마셔야 하고, 술을 마시고 나면 노래방을 가거나 2차를 마시러 간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마시는 것은 대학교 때도 다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대학에서는 다른 학교의 사고라도 뉴스에 한 번 나고 나면 술자리에 대해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되기도 했고, 대학 생활은 짧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을 그리 많이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하고 나니 그리 많이 마시지 않아도 되는 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던 것 같다.
직장에 들어와서 회식을 하면서도 특히 소주는 많이 마시지 않는다는 점을 많이 어필하긴 했지만 강제로 마시게 하는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는 코로나를 지나면서 자제하는 분위기가 많이 확산된 편이지만 사실 억지로 마시라고 하던 사람들은 퇴직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는 법밖에 모르니 그렇게만 하겠다는 사람들이 혁신이니 기회니 하는 말은 그렇게나 좋아하던 걸 보면 기업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술을 마시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술이 있어야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느니,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지 않으면 회사 생활이 힘들어진다느니 하는 말들. 하지만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은 술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는 사람들을 이해할 생각도, 이해할 능력도 없어 보였다.
남들에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설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 문장을 해석하고 의식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보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춤을 추는 것만큼이나 능동적이다. 글을 쓰는 것 또한 자기 고유의 생각이라는 것이 과거와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행위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마음속의 독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이것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실로 무례한 일이 된다.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는 당사자가 자진해서 보여줄 때까지는 남이 억지로 보여달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단순한 일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과거에는 무척이나 많았다. 책을 읽고 있으면 왼쪽 부분을 잡고 휙 뒤집어서 표지를 보는 일을 상습적으로 하던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책을 읽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가십거리가 필요해서라든가 '그런 책 읽지 말고 재테크 책을 읽어라'처럼 참견을 하는 경우가 전부였다. 글을 쓰고 있으면 뒤에 와서 서서 몰래 보고 있기도 했다. 내가 아직 회사에서 어린 축에 속했을 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들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작은 수첩에, 오며 가며 중간에 잠시 서서 끄적거리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때는 내가 글을 쓰는 수준도 장문을 쓴다는 것은 욕심은커녕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짧은 글만 쓰게 되는 데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내 개인적인 상황에 맞게 환경이 바뀌어 왔다는 점은 세상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기에 지금 와서 회사에서도 점심시간에, 출근 직후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격 또한 그때와는 달리 마음대로 화를 낼 수 있을만한 상황 이어서이기도 하다. 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조직에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굳이 터치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글은 써야 는다. 글을 쓰지 않는 기간이 이틀만 되어도 다시 쓰기가 힘이 든다. 글을 쓰지 못하는 데에는 보통 회사에서 집중할 만한 일의 성격이 내가 쓰는 글의 성격과 맞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이다. 컴퓨터 시스템 관리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논리적인 부분에 치중하다 보니 주말 등 완전히 그 생각에서 벗어날 기회가 되지 않으면 생각이 자유롭게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워드 파일에 쓴 글을 읽어 보아도 회사에서 바빴던 때에는 아무리 야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며칠씩, 혹은 몇 주씩 글이 없을 때가 있다. 생각이 단단해지는 것도 좋고 전문성도 좋지만 글을 조금 더 쓸 수 있는 유동성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때보다 나은 상황이 되고 보니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책 읽기, 그리고 글쓰기를 하는 내게 시대는 이만큼이나 바뀌어 왔다. 그에 반해 내 글은, 내 책 읽기는 얼마나 변해 왔는지 모르겠다. 좋은 쪽으로 발전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내가 책을 고르는 방식은 옛날 그대로이고 글을 쓰면 어떤 때는 마음에 들다가도 어떤 때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도로를 건설하듯이 모두 편평하게, 그러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나를 안내해 주면 좋겠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술술 읽히면서 글이 마구 떠오르다가도 글을 쓰다가 갑자기 흐름이 뚝 끊기는 일은 나조차 언제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이 아직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평생 글을 쓴다고 해서 숙제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 또다시 대답할 수 없게 된다. 과거에는 눈치가 보여서 쓰지 못한 글을 이제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는데, 나중에 가서 시간이 충분한데도 고민이 부족해서 써 보지 않은 글이 있다면 얼마나 후회스럽겠는가. 더 고민을 하고 더 마음을 써야겠다. 그럼에도 회사일을 열심히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 이제는 글쓰기조차 워라밸의 범주에 들어서고 말았다. 회사일만큼이나 글을 고민하는 일이 익숙해지면 그 둘 사이에 균형을 잡기 조금 더 편해지겠지. 역시 또 시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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