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Jun 07. 2024

익숙함의 힘, 관성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꾼 꿈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침에 뭔가를 쓰려고 메모장을 여는 행위가 너무나 낯설었던 것이었다. 노트에 적으려 했지만 글씨를 쓰기 위해 집중을 하는 동안 꿈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많아서 시험 삼아 휴대폰 메모장으로 되돌리려고 했는데, 그것도 오랜만이라서인지, 적극적으로 글을 쓰려고 한 것이 며칠만인데도 그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는 쪽으로 익숙해진 것인지, 그 낯섦이 한순간 꿈을 모두 잊어버릴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대학 시절 교양문학 시간에 시 작품을 배우던 중이었나, '낯설게 하기'에 대한 기억이 다시 소환되었다. 이 기억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때도 문득, 난해한 것처럼 보였지만 마침내 작가의 관점으로 보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쁨이 밀려올 때도 문득 머릿속을 차지하곤 한다. 낯설게 하기는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글을 쓰는 당사자에게도 글쓰기가 직접적으로 삶의 양분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같은 일상을 같지 않게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각의 흐름을 글로 쓸 때만큼 글쓰기가 생활이 될 수 있게 할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익숙함의 동물이고, 도구를 개발할 줄은 알지만 도구에는 선악이 없다는 말처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이 없다. 한 가지 도구를 보더라도 수만 가지 용도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상상력은 인간이 받은 축복인 건지 모르겠지만, 낯설게 하기라는 것, 익숙한 일상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글쓰기에 해당하는 순간, 그러니까 흘러가는 일상의 수많은 일들 중 하나를 매일 지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처럼 바라보는 것의 대상이 마침 글쓰기가 되는 순간, 다시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워졌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으면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것도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것은 핵심이 되는 생각을 놓고 그 생각이 어떻게 가지를 치는지 어렴풋이 모르는 척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생각이 발전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받아 메모를 하는 것인데, 그 과정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었다.
글쓰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글을 쓸 주제, 글감 같은 것을 확보하는 것부터 글을 다시 읽으며 맞춤법 오류나 비문 등을 찾아내는 것까지 모든 과정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제까지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것조차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글쓰기 위한 생각이 낯설다는 것은 글쓰기 위한 준비가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까스로 '글쓰기 또한 일상의 하나여서 익숙함의 혜택을 입고 있었던가 보다.'라고 메모를 남기기는 했지만 그런 느낌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고, '이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글을 못쓰게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익숙함이 걷혀나간 글쓰기는 그럼에도 기다리면 생각은 다 똑같은 원리로 머릿속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억지로라도 쳐다보고 있으면 된다. 이런 것을 경험상 아는 것이 익숙함의 장점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척할 수 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생과 사와 글과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