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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08. 2024

책을 많이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책 읽을 때 말 좀 걸지 말았으면

옛날 옛적 이야기이다. 입사한 지 십 년쯤 되었을 때, 회사의 부조리가 이것저것 눈에 들어오고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나만의 요령이 생겨서 인정받기 시작할 때였다. 틈이 나면 책을 읽고 다시 덮어 두곤 했다. 그때 나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책 읽기에 대한 시선'이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표지를 휙 뒤집어서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전까지는 가만히 있었지만 십 년 차 정도 되고부터는 성격을 드러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일이 있으면 노려보면서 책을 집어던져버렸다. 그러면 "지금 선배한테 뭐 하는 거냐?"는 말이 돌아왔다. 나도 지지 않고 "휴대폰 보고 있으면 뺏어서 뭘 보고 있었는지 봐도 가만히 있을 건가요?'라고 물었다. 그런 사람이 서너 명이나 되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 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건 그냥 예의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당시 예의를 몰라서 그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 좀 읽는다고 유세 부리냐?'라는 생각에 일부러 그랬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일부러 예의를 지키지 않았으면 당연히 화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내가 저렇게 쏘아붙였을 때 '책과 휴대폰이 같냐?'라고라도 항변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내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는 '짬 내서 뉴스를 보나 보다'라고 하면서 짬 내서 책을 읽고 있으면 '시간 많냐? 한가하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시선 자체가 그런 것이어서 예의와 상관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항변하기도 그랬다. 그래서 책을 그냥 읽지 않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책을 읽어도 '할 게 없으면 탁구 치자'는 말이 돌아왔다. 독서는 보여주기용 행사라는 것이 온 머리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듯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도 없고 전체적으로 딱히 피해를 주지 않으면 뭘 하고 있던지 터치하지 않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어서 매우 좋다. 일을 방해하는 것만 아니면 휴대폰을 보고 있건 책을 읽고 있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는 것으로 뭐라고 하는 건 자격지심 말고는 생각하기 힘들기도 하고. 

그런데 최근 책을 읽고 있는데 부장님이 물어보셨다. 

"ㅇㅇ과장처럼 책을 많이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건 아는데 안 읽어지더라고." 

이건 촉이 온다. 아주 오랜만에 책에 대해 정말 대답을 원해서 하는 질문이 아닌 것이 날아왔다. 그냥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거야?'라는 단지 사교적인 멘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 부장님이 아니라 사장님이 와서도 그런 비건설적인 대화를 하자고 하면 책을 덮고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대답을 잘해서 승진을 하거나 연봉이 올라간다면 몰라도 내가 노력해서 이룬 것이 아닌데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하는 그런 이상한 것에 머리를 짜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좋아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지 같은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여기저기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얘기 많이 하잖아. 나도 그런 얘기 듣고 있으면 공감을 하니까,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

"그럼 이미 늦었어요. 못 읽으세요."

부장님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하려다가 다시 가만히 있다가를 반복하다가 다시 물었다.

"이미 늦었다니? 노력해도 안된다는 거야?"

"저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 걸 많이 들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다고 읽으시겠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어차피 안 읽으시겠지요."

부장님은 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는 이런 화법을 매우 싫어한다. 대화를 끊기 위해 일부러 한 것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고3 때 고해성사 때였다. 원미동 성당에서 판공성사를 도와준답시고 보좌신부가 왔다. 내 차례가 되어 내가 죄를 고백했다.

"성당을 두 달째 빠졌습니다. 한 번씩 미사를 드릴 생각은 했는데 주말에도 학교에 가다 보니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대뜸 그러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왜 해? 어차피 또 안 나올 거잖아?"

그때 생각했다. 신부라고 오냐오냐 해주면 안 된다고. 미친놈이 생각보다 사회에 너무 많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용서를 내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직접 막겠다,라고 떠드는 신부라니.  때문에 '어차피 ~잖아?'라고 되묻는 화법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지만 가끔씩은 해야 할 때가 있다. 

부장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충고나 그런 거 해 줄 수도 있잖아. 그렇게 칼같이 자를 필요가 뭐 있어?"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책을 읽으면 좋다는 말은 많지만, 찾아보시면 좋은 영화를 되도록 많이 찾아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옵니다. 책이 몸에 맞지 않으면 굳이 그걸로 스트레스받으실 필요 없습니다. 운동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운동을 어차피 안 할 사람이 운동을 안 했다고 스트레스까지 받으면 얼마나 더 안 좋아지겠습니까?"

그런데 부장님이 테니스를 좋아해서 그런지 의외로 여기서 자극을 받았다.

"운동을 아예 안 해서 위험할 정도의 상태인 사람인데 운동하라고 했다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안 좋아져? 좋아, ㅇㅇ과장이 그렇게까지 비유를 하니까 내가 위험할 정도로 책을 안 읽은 상태라는 걸 알겠네. 억지로 책 읽으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될 정도라니."

의외의 지점에서 의외의 방식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의외로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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