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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09. 2024

의지가 부족했다고요?

얼마 전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글쓰기'로 검색을 해 보았다. 공부할 때 들을 만한 곡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는 많이 보았는데 글을 쓰면서 들을 만한 곡을 모아 놓은 것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검색한 것이지만 의외로 글쓰기를 주제로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도 꽤 되었다. 그중 맨 위에 있는 '글 쓸 때 몰입하려고 듣는 음악'이라는 플레이리스트가 눈에 띄었다.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일단 틀어 보았다. 운전 중인데도 눈앞의 광경에 몰입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을 쓸 때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책을 읽을 때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였고 리듬도 느리지 않았다. 책을 읽든 글을 읽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내용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으면 장소도, 때도 가리지 않고 키보드부터 펼쳐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수동적으로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는 공부조차도 그렇게 안 되는데 적극적으로 하는 글쓰기와 독서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분위기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소에 변경을 주는 것이다. 내게는 책은 집에서 읽는다,라는 규칙이 오랫동안 있어 왔고 덕분에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생 때도 독서실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도서관 열람실은 고3 때 좀 가보았고 대학교 때도 학교에서 밤을 새우게 되면 열람실이 필수 코스였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대부분 집에서 공부하는 편이었다. 책상을 창가에 두거나 아예 방이 작으면 날씨에 의해서도 분위기가 계속 바뀐다. 내 경우에는 책상 위의 배치를 한 번씩 바꾸어서 분위기를 환기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건 한계가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직장에 다닐 때는 책상을 거실에 두었다가 다시 방에 들여놓았다가 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드레스룸 화장대에서 글을 쓰려고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창가에 책상을 놓는 것이다. 햇빛을 직접 받으면 글을 쓰는 기분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다. 빗소리가 들리는데 눈앞에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조용한 재즈가 흐르는 가운데 눈이 내리고 있으면 저절로 글이 써진다. 그럴 때면 글의 종착지는 시라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만 해 주는 시. 하지만 시를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환상인 것인지 아직까지 시는 내가 제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 간혹 그런 느낌을 받는 시를 읽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 시를 읽는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좋은 자리를 찾아서 옮겨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기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옮기는 것이 맞다. 그중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저렴한 방법이 카페를 찾아가는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 글을 쓸 컴퓨터를 꺼내 놓는다. 잠시 사람들을 흘깃 쳐다보고 카페의 천장을 바라본다. 다시 테이블을 보고 멍하게 있는다. 그리고 나면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를 찾아올 시간이 되고, 테이블에 예쁘게 배치를 하고 나면 그제야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 경험상 글은 테이블이 어두운 색일수록 몰입이 잘 된다. '글 쓸 때 몰입하려고 듣는 음악'을 듣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테이블이 어두우면 그만큼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쉬워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테이블이 밝은 나무색이거나 흰색이면 마음도 함께 들뜨는 느낌이다.
글쓰기 좋은 카페가 몇 군데 있다. 내가 아는 곳은 대부분 용산에 있지만 프랜차이즈를 고르자면 커피빈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싶다. 테이블은 밝은 색이지만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어두워서 전체적인 분위기부터 테이블까지 모두 밝디 밝은 스타벅스보다는 나은 편이다. 스타벅스도 2층이나 3층에 올라가면 집중이 잘 될 것 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자리가 없어서 한 번도 직접 글을 써 본 적은 없다.
가장 궁극적으로 가능성은 낮지만 희망을 걸 수도 있고 로망이기까지 한 옵션이 하나 있다. 바로 호텔이다. 창가에 책상이 있고 스탠드를 켜고 편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서 내다보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곳. 보통은 책상이 창가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창가에 커피를 마실 테이블이 있으면 거기서 책을 읽고 글을 써도 상관없다. 글을 쓰다가 방 안을 한 번 둘러보고, 창밖을 한 번 보고. 그런 점에서 코엑스 주변의 글래드 호텔만 한 곳이 없었다. 더 좋은 호텔은 단지 글을 쓰러 가기에는 아깝고 모텔에 글을 쓰러 간다면 마치 밤새워서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정작 창밖을 보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다른 건물의 뒤편만 보일 뿐이다.
사실은 나는 글을 쓰면서 보통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음악을 틀고 이것저것 장치를 해서 계속해서 서로 다른 호텔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로 내 기분을 바꿀 수 있는 장치는 발견하지 못했다. 항상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하는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메모를 보고 주제를 다시 찾는 것. 나머지 하나는 영상을 켜는 것.
메모를 보고 글을 쓸 주제를 고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디서나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앉아서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글만 쓰는 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바보'일지도 모른다. 간혹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행운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남기고 그 메모가 다시 그 생각들을 종이에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해 준다. 그리고 글을 쓰려고 앉으면 그 메모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다시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매번 바뀌기는 하는데, 유튜브에서 타자기를 치는 영상이 있다. 그 영상을 켜 놓고 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나는 자판을 마치 옛날 '한메타자교실'에서 점수를 따듯이 빨리 치면 생각의 흐름이 끊겨 버려서 글을 많이 쓰지 못한다. 생각이 자판에 덮여 버린다고나 할까. 그래서 글은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편인데, 마침 유튜브에 천천히 타자를 치는 영상이 있어서 그것을 틀어 놓는 것이다. 무엇을 치는 것인지는 궁금하지 않아서 화면을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휴대폰의 비디오 앱을 보니 화면을 꺼도 소리만 재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 것이었다. 기능이 있으면 써야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집에 있던 세미클래식 CD에서 뭔가 비장한 느낌이 드는 곡만 골라서 CD 플레이어 프로그래밍에 등록했던 적이 있었다. 프로그래밍이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우스울 정도인데, CD를 넣고 그 CD에서 몇 번, 몇 번, 몇 번 트랙을 재생할지 지정해 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 CD 안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 어디선가
"공부가 잘 되고 안 되고 하는 게 음악 가지고 정해지면 되냐? 그건 그냥 집중력이 없는 것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게 나에게 맞는 방법이라 그냥 쓰는 것이고 그도 그에게 맞는 방법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니 별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말이기는 했다.
'내가 그런 음악이 없으면 공부를 못할 만큼 의지가 약했나?'
그렇지만 그 음악을 틀어서 집중을 잘했다고 해서 그 음악을 틀지 않았으면 집중하지 못했다는 건 다른 문제로 보인다. 지금은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음파로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엠씨스퀘어'라는 제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 1등도 그 제품을 사용했었는데, 우리가 그게 공부에 도움이 되냐고 묻자 그 친구는 간단히,
"도움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익숙해져서 소리를 틀면 공부할 시간이라는 생각은 들어."
라고 했다. 나는 그 제품이 없었다고 해도 그 친구가 1등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돈을 들여 호텔에 가서 글을 쓴다고 해서 집에서 쓰는 글보다 월등하게 좋은 글이나 절대적으로 몇 배나 되는 양의 글이 나올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내 생각에는 '재미'의 영역이다.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더 오래 하고 더 많이 하고 싶어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글을 더 재미있고 더 오래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뭔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 좋은 음악,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것,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 모두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지만 그 좋아하는 것을 더욱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당장 글을 쓸 주제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가만히 주위의 것들을 몇 시간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여유가 부족한 것이니 글을 쓰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맞다. 절대 우리는 의지가 부족하지 않다. 타자 치는 소리를 듣는다고 글 쓸 것이 생각나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글을 쓴다. 그러니 나도 타자 치는 소리를 들어서 글을 쓸 것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것이 있는데 글을 '더 재미있게 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타자기 소리를 재생하는 것뿐이다.
글이 써지지 안하도 절대로, 절대로 의지가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사람들과 돈을 모아서 호텔을 하나 잡고 여기저기 침대 주변에 앉아서 여덟-아홉 명이 글만 쓰다가 헤어지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에 글 쓰는 사람들을 포진시키는 것도 글이 잘 써지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
다시 말하지만 이런 질문은 틀렸다. 글이 잘 써지는 분위기를 만든다니. 이 문장을 제대로 쓰면 이렇다. '주위에 글 쓰는 사람들을 포진시키는 것도 글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법이 될까?' 그리고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해 보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어 보이지 않은가? 재미. 그래서 돈벌이가 따로 있는 것은 그것대로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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