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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12. 2024

작가가 되는 순간

언젠가 나는 글을 쓰지만 작가는 아니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의 생각은 글을 계속해서 써 나가려면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는 안 되고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지만 단순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말 글을 써야만 하기 때문이 쓸 때에야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이 좋아서 작가라고 소개한다"라고 말해도 옆에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작가라는 '신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글을 써 나간다면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여러 번 해 보았다. 그러나 언제쯤 되면 글을 쓴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저는 무슨무슨 일을 하지만 글도 씁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간주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언제일까?
그 기간에 대해 계산까지는 아니고 대략적으로 생각만 해 보았다. 내가 나를 작가라고 소개를 한다면 손해 보거나 질투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없다. 내가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할 만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가? 없다. 누군가 내가 스스로를 작가라고 인정하기 전에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것인가? 그렇다.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진 끝에 내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도 될 만한 시점을 정했다. 시점이지만 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위로는 부족하다. 남에게 공개하는 글의 숫자면 될까? 그렇다면 아마도, 글을 지금 같은 속도로 800편 정도 쓰게 되면 글을 쓰는 것이 생활처럼 스며들지 않을까? 작가는 가수와 달라서 준비와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가 무대가 펼쳐지면 거기서 뭔가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계속해서 글이 나오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텀이 조금 길어서 그 글이 책의 형태를 띠게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글은 계속 나와야 한다. 어떤 때는 나오다가 어떤 때는 나오지 않고, 그러다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활을 희생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면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 글을 쓰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나 자신이다.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노력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을 하는 그 시간, 기간, 그것이 필요하다. 노력은 혼자 가지 않는다. 노력에는 인생에서 떼어다 주어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따른다. 글을 쓰는 노력을 하는 동안, 글을 쓰는 데에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인생을 깎아 부스러기만 준다고 해도 그것조차 노력으로 채워야만 의미가 있다. 글 쓰는 사람, 작가가 되면 글을 쓰는 노력을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작가가 되면 글감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것을 글로 바꾸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800편의 숫자가 나온 과정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300편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태에서 200편, 300편이 나오는 동안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한다면 글을 쓰는 모습 정도는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500편 정도 쓰게 되면? 비슷할 것 같다. 그러면 그냥 800편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된다고 해서 글을 쓰기 편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삶이 되는 것 말고는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금은 누군가 글을 쓰지 못하게 틀어막거나, 일정 때문에 글을 쓸 시간을 내지 못하면 답답해지는 정도이지만 그때가 되면 그 정도가 심해질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글이 인정받거나 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내가 쓰는 글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계속해서 내 내면의 나에게 말을 걸고 그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 것,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 메모를 하고 나중에 그 메모를 곱씹으면서 나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가끔은 꿈을 받아 적는 것, 그리고 그 꿈으로 쓴 소설을 공유하는 것, 그 정도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800편이라는 숫자는 너무 먼 숫자 같지만 그래서 또 애틋하다. 그 정도 글을 쓰게 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제발 그만큼 써서 그렇게 되는 나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면서, 그렇게까지 글을 쓰는데 매달려서 800편씩 써낸다면 누구라도 작가라고 불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글을 쓰지 않고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800편은 몇 개월이면 되는, 절대적으로 많은 양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나름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을 목표로 잡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그때가 되면 글을 쓸 때 나오는 내 안의 나,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하게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글은 아직 없다. 그의 생각이라고 해도 결국은 내 의식으로 다듬어진 후 글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글에 담긴다. 그런 것이 익숙해지는 그때가 아마 스스로도 작가라고 생각하게 될 때일 것 같다. 멀지만 너무 멀지만은 않은 그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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