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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Jun 12. 2024

800편의 글을 쓰고 나면

어떤 사람이 10년 동안 게으른 날이 단 하루도 없이 돈관리를 꾸준히 했다고 하자. 실제로 한 일은 전광판에 표시되는 대로 입금을 하고 출금을 한 것뿐이었지만 10년이 지나자 어쨌든 그 성실성을 인정받아 전광판에 표시되는 숫자를 계산하여 나타내는 역할로 승진을 했다고 하자. 그는 그때까지 전광판에 나오는 숫자가 어떻게 해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경제가 그때까지와 동일하게 흘러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긴다면 그의 후임은 전광판에 나온 숫자대로 입금을 하고 출금을 할 뿐이지만 얼마든지 손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글을 800편을 쓰고 나서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고 글 쓰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고 나면 그 이후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글을 쓰느냐가 아닐까? 그때까지는 글을 쓴다는 사실만 중요하게 생각해도 충분할 것이다. 중간에 하차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한 것이지만 글이라는 것은 결국 읽혀야 한다는 것, 10년간 입출금한 사람이 실제로는 입출금이 아니라 결국 이익을 위해 투자를 하는 과정에 기여해 온 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처럼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800편을 쓰는 동안 내가 올곧게 한 길로만 간다면 과연 그때 가서 내가 쓰는 글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억지로 변화를 주려고 하다 결국 죽기 직전에 "나는 평생  800편의 글을 써 왔다."고밖에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작가라는 명칭을 쓰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되었을 때 어떤 글을 쓰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라면 800편이 되기 전에 내가 쓰는 글의 색깔을 정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쓴 글이 쌓여가면 쌓여 수록 내 글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커져 가는 만큼, 그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나의 글에 대한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편으로 내 글을 읽어보니 흐릿하기만 할 뿐, 특별히 이러이러한 글을 써 왔구나,라고 특징지어 말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속마음을 풀어놓고 경험담을 덧붙이는 정도만 반복해서는 수많은 아류들이 판을 치는 우화형 자기 계발서만도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계속해서 읽힐 만한 글이라는 건 수익 모델도 아니고 대중에게 먹힌다는, 대중문화 상품 양산도 아니다. 그저 '이러이한 글을 읽고 싶을 때 저 작가의 글을 읽듯이 저러저러한 글을 읽고 싶으면 루펠의 글을 읽는다.' 정도의 방향성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조급함은 내 글에 그러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피어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결론을 내었지만 만약 그런 것이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거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라면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모자라서일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글을 쓰면서 경험이 쌓이면 그때 가서 방향 지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쓰는 데 들인 시간이 모자라서이다. 만약 그런 것이 글을 쓰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답이 보이는 것이라면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내가 글을 쓰면서 고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이다. 그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글을 쓰는 것이 해답이 아닐지라도 글을 써야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이다. 그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글쓰기와 생각과 고민에 시간을 들여야만 해결될 문제이다.
이런 고민은 즐거운 편이다. 외부의 변수가 많아 전전긍긍하는 고민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달린 고민. 이것은 아마 공부를 해야 하니까 하는 것뿐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던, 그러니까 심지어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공부하는" 학생이라 어쩔 수 없이 공부만 해야 했고등학교 시절의 고민과 닮았다. 미래의 가능성이 너무 커서 그 폭을 줄이기 위해 하는 고민이라 즐거운 고민이다. 그 시간 하나하나가 나에게 기쁨을 주고 한 글자라도 더 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고민이다. 글을 써서 행복하다. 언젠가, 이 행복이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고민을 하고 있는 그 현재에 대한 것이기를, 그래서 '작가의 고민'이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이 되길 너무 슬프고 기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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