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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25. 2024

글을 쓰다가 익숙한 느낌을 받으면

누구나 말을 하고 살아간다.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 없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말없는 사람도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해야 한다고 할 만한 상황이 될 때까지 말을 할 수 없을, 말을 하기 힘들 뿐이다. 붙임성이 없으면 사회생활이 힘들어질 거라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하지 못하는 건 하지 않는 것과 달리 말 그대로 하지 못하는 거다. 그렇지만 연습을 하면 말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기는 한다. 그것은 마치 무대에서 연설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평소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에 발표를 하는 사람과 비슷한 정도의 압박을 받아야 일상적인 말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을 하면 점점 늘듯이 일상에서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늘려가면 가벼운 토크도 늘릴 수 있다. 그런 노력의 필요성을 느끼는 한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인은 했지만 일이 년 간 말을 별로 하지 않으니 다시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말을 못 한다고 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지만 매번 일부러 말할 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사람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하는 사람이 있으며 말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어도 다른 사람들이 짜증을 내거나 지루해하기 시작하게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말을 하며 살고 있고 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게 굳이 대화를 길게 이어간다는 것뿐만 아니라 단순한 대답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누구는 잘 읽히는 글을 쓰기도 하고 똑같은 내용을 어렵게 써서 이해하기 어렵게 쓰는 사람도 있거나 그냥 못 쓰는 사람도 있지만 글을 아예 쓰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글도 말에서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메모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메모라고 해도 열심히 쓴다면 글을 쓰는 것은 얼마든지 잘 쓸 수 있다. 말을 많이 하면 아무리 소극적인 사람도 어떤 종류의 말 익숙해지기만 하면 말이 많아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에 메모를 간단하게 남기던 사람이 명사에 조사를 붙이고 서술어를 '-임', '-했음'의 형태로라도 사용하기 시작하면 문장이 되고 또 거기에 익숙해지면 매일 단순한 글의 종류인 메모가 아닌, 문장을 써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쓰는 글도 결국은 단편적인 명사와 동사의 나열일 뿐이던 것이 점차 조사가 붙고 형용사가 붙고 그렇게 생긴 문장이 다른 문장과 뭉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처음부터 완전히 만들어 놓고 쓰는 글은 없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그렇게 머릿속으로 구상했다가는 결론까지 다 내리고 글을 쓰려고 할 때 가서 앞부분은 모두 잊어버려서 쓰지 못하고 결론만 달랑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어떤 생각이 어떻게 갈라져서 어떻게 발전을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다 쓰고 나서 재배치라도 해야 짜임새 있는 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글을 쓰는 것보다, 내 글을 다시 읽는 것보다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더 즐거운 시기이다. 나중에는 내 글을 쓰는 것이 즐거워질 것이라는 확신은 아니지만 한정된 여가 시간에 책을 읽느라 글을 쓰는 시간이 침범당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도 즐거워서 쓰는 것뿐이니 더 재미있는 책이 있어서 독서를 즐긴다면 내가 나를 탓하고 뭔가 노력을 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일아니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쓰다가 보면 요즘 들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글이 써지지 않을 때인데, 사실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어색해할 것도 없다. 내가 당황하게 되는 것은 글이 써지지 않는데 글쓰기가 익숙하다고 느껴질 때이다. 엄밀히 말하면 글은 막혀서 꼼짝 못 하고 있는데 그게 익숙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그러니까 글을 쓸 때의 자유와 글을 쓰는 행동 자체 사이에 괴리가 느껴질 때이다. 글을 쓸 때는 생각이 날아가면 그 생각의 궤적을 따라가며 열심히 받아 써야 한다. 생각이 자유롭게 날아가는 만큼 내 글도 자유롭게 써지는 것이다. 어쩌면 글 자체가 생각보다 역동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치 병목현상이 일어나듯이 생각이 멈추다시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타자를 멈추고 잠시 생각이 다시 출발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글을 쓰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눈으로 들어오는 문장의 속도가 실제 문장이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한 행동이고 편안하게 느끼는데 문장이 빨리빨리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글을 쓰는 몸의 행위와 글이 떠오르는 머리의 작용이 따로인 것처럼 느껴지 것이다. 글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을 단순히 받아 적어야 하는 활동임에도 그 활동 자체에 대한 익숙함 때문에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다. 왜냐하그런 식의 생각을 그냥 두면 마치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단지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은 뭔가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라 결론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글을 쓰는 일을 말을 하는 것과 비교해서 생각해야 한다. 글은 입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와 하는 대화이다. 누군가에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다. 당연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멈추면 글도 멈추어야 한다. 누가 더 익숙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다가 멈춘 일이 다시 진행될 때까지는 글을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말을 하다가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 해서 대화가 걸리면 쉽게 시작할 수 없는데, 이때 스스로 "나는 말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생각이 안 나서 말을 못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인데 거기서 말하는 능력을 끌어다 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글도 마찬가지로 그냥 쓰면 되는 것이다. 생각이 나지 않고 생각이 멈춰서 글이 멈추면 그냥 글이 멈춘 것이지 글쓰기라는 활동 자체에 대해 익숙하다느니 하는 생각은 필요 없다. 글은 잘 써지는데 생각이 진행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원인은 단 하나다. 글이 써지는 것 자체에만 중요성을 부여할 때가 그렇다. 빨리 분량을 채워야 한다거나, 급하게 결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거나, 심지어 머릿속에서 글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과 피곤하다는 생각이 충돌할 때도 그럴 수 있다. 너무 많은 경우에 그런 생각이 나다 보니 일일이 기억하기도 함이 들 지경이다.
그럴 때는 어쨌든 머릿속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에서 멀찍이 떨어지는 것이 상책이다. 가까이 있지 말고 상대도 하지 말고 그냥 차라리 책을 읽는 편이 낫다.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읽으면 더 좋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도 싸움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끄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책을 덮은 후에 비해 약간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내가 글을 쓰는데 약간이라도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자신감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허영심이나 자만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자신감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허영심이나 자만심도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것은 본인의 취향대로이다.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차피 결정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 때문이다. 다만 내가 내 생각으로 여기에 숟가락을 얹자면, 나는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행위가 익숙하게 다가오면 어색함을 느낀다. 글을 신나서 쓸 때에는 그런 생각이 파고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글은 멈추게 되어 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고 잘 다루지 못한다. 글 쓰는 나조차 글을 쓰면서 반복되는 나와의 싸움에 매일같이 당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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