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펠 Jun 27. 2024

골목길 카페

지금은 다르지만 과거에는 어땠다, 하는 이야기는 늘 지루하게 끝나기 일쑤였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변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변화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힘 빠지는 결론을 가지고 왔다. 산업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경험이 그럴 수는 없지 않나. 그만큼 지금에 비해 과거에 더 획일적인 문화였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시골이었던 곳이 로또 맞듯이 도로가 나고 역세권이 된다. 심지어 경기 남부, 수원에서 분당을 잇는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곳은 말 그대로 부동산 가격의 폭탄을 맞은 수준으로 돈을 벌지 않았을까? 허허벌판이었다가 역세권이 된 곳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공황이 올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기에 민감해진 시기이니 더욱 돈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당시에는 2000년대 초중반이었으니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 땅을 팔아 치우는 게 맞냐, 지금밖에 제대로 기회가 없다 등 돈을 벌어서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대화오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당연했지만 지금은 다른, 그런 것들은 항상 있어 왔다. 전화기와 휴대폰 이야기는 이미 식상한 주제이고, 빌라가 들어선 곳이 과거에는 단독주택이었던 곳도,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과거에는 5층짜리에 각 집마다 현관문 옆에 연탄구멍이 있는 아파트였던 곳도 있다. 삶과 건축은 기술과 양식이 변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집도 많았지만 이제는 밖에 화장실이 있는 단독주택도 개조를 해서 집 안에 화장실이 긴 것처럼 말이다.
늘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내게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 하나 있다. 카페. 과거에는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딘독주책 외에 보이는 것 세탁소와 슈퍼마켓 정도였다. 그 외에는 한참 걷다 보면 나오는 바느질해 주는 미싱집이나 전파상, 철물점 같은 것들도 있기는 했지만 주택가 안에는 가끔 보일 정도였다. 한 블록 안에 하나 정도? 내가 자주 가던 전파상은 비디오 대여점도 함께 했다. 어릴 때 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도 그곳에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집으로 빌려 와서 보았고, 내 생애 첫 전압/전류 테스터기도 거기서 구입한 제품이었다. 싼 것으로 고르다 보니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버렸지만. 

옛날에는 뭔가 모르는 가게를 찾기 위해서는 큰길을 따라가야 했다. 주택가는 말 그대로 주택 많기 때문에 가게는 별로 없었으니까. 가게들도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경우가 있기는 했다. 코너에 그나마 좀 있었던 부동산들도 포함해서.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리 일부러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보통 그런 골목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지만 출장 등으로 모르는 동네에 가게 되면 서울인 경우에는 식사를 한 후 눈에 띄는 골목에 들어가 보는 편이다. 유동  인구가 조금 있다 싶으면 카페나 디저트 가게라도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나오지 않는 곳일수록 골목길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회사들이 모여 있는 곳 근처도 마찬가지이다.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람으로 가득 차서 여유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다가도 두세 시만 되면 책을 읽기에도 좋고 멍하게 창문만 보고 있어도 마치 80년대 주택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카페라도 유동 인구가 전혀 없는 곳에는 생기지도 않고 생겼더라도 금세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내가 걷다가, 혹은 출장지 근처에서 그렇게 골목길로 훌쩍 들어가 보고 싶을 때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실제 가게를 내거나 비용 산출을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하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방식이지만 그런 동네가 내가 갈 일이 생길 정도로 주위에 원래 뭔가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모르는 동네에 볼일이 있어서 갔을 때는 집구경만 실컷 하다 나오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먼저 골목 입구에 뭔가 있어야 한다. 식당이면 가장 좋고 편의점이라도 있어야 한다. 편의점만 있어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는 되는 것 같다. 둘째, 큰 길가라면 근처에 식당이 있어야 한다. 골목 입구에 식당이 있더라도 근처에 식당이 또 있어야 한다. 골목 주변에 사람이 별로 안 다니는데 골목 안에 사람이 많이 다닐 거라고 상상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셋째, 골목 주변에 큰 카페가 없어야 한다. 크다는 기준은 따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주변 식당들과 비교하면 대략적으로 공간이나 인테리어 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겉으로 보이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왜냐하면 골목 주변에 그 공간과 어울리는 카페가 있다면 나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볼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카페에 가 볼 거니까. 굳이 카페를 눈앞에 두고 다른 카페가 있나 싶어서 모르는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 보는 일은 잘 없는 편이다.
옛날에는 골목을 돌아다니면 목적은 슈퍼마켓이었다. 음료수 하나 사서 가게 앞에서 캔을 따고 꿀꺽꿀꺽 다 마셔버린 후 슈퍼 앞에 있는, 검은 봉지를 씌운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슈퍼 앞에 평상이라도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슈퍼를 찾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니 옛날엔 모르는 동네에 출장을 가서도 식당에서 나오면 담배나 피우다 다시 복귀하는 일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80년대에는 어려서 회사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순전히 추측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어디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다리 쭉 펴고 앉아 있을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와 비교해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더운 여름에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편이지만 말이다.
이런 골목들이 삼십 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밀물에 주택가 곳곳으로 들어왔던 가게들이 다시 사라진 삭막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큰 길가로 썰물처럼 쓸려갈지.

매거진의 이전글 궤도 복귀를 희망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