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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27. 2024

궤도 복귀를 희망하며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감정선을 파악해야 하는 것은 상황이 확실하기만 하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나에게 적극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를 끼치는 상황에 대해서는 대비한다고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블로그에 징징거리듯이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글의 성격을 바꿀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때로 파란 하늘에 벚꽃 잎이 날릴 때 서글픈 마음이 들면 그 마음조차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표현들은 마음에 담고 있으면 저절로 내 삶의 무게로 짓눌러 시간이 나면 자연스럽게 꽃물 들듯이 문장에 배어 나올 것이다. 추운 겨울날, 아무리 껴입어도 손발 끝에 머무는 추위를 쫓아낼 수 없을 때의 무력감은 따뜻한 곳에 들어와 엉덩이 밑에 손을 넣어 살짝이나마 따뜻해진 것을 느낄 때면 어렴풋한 기억처럼 희미해지지만 문장을 쓰면서 내 능력 때문에, 내 감정 때문에 막힐 때면 다시 스멀스멀 또렷하게 재생될 것이다.
그렇게 매일 일어나는 느낌 내 삶 속에 녹아들도록 마치 장을 담그듯이 볕 드는 곳에 내놓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그 느낌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그 감정을 무시하고는 글쓰기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감정은 묻어 둔다고 글에 스며들지도 않고 삶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심지어 글조차 써지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는 두개골이 깨질 듯 부풀어 오르기 때문에 여느 처럼 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부서에는 유독 일머리가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일머리가 없을뿐더러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이해가 느려서 도움을 요청하기 일쑤이다. 나뿐만 아니라 도와준 적이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정도이다. 그렇지만 회사의 인력 운용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일이 늘면 그 분야는 도맡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해가 느린 것이 아니라 느린 척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빨리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절묘하게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일이나 다른 부서와 협조를 해야 하는 부분만 골라서 헛다리를 짚고 엉뚱한 문서 만들어낸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닐 때도 일을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도와달라고 할 때는 '질문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것이 모토인지 당당히 며칠 동안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 할 때도 있다. 그쯤 되면 대답을 들으려고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대답해 주는 사람을 상황을 모면할 열쇠 같은 도구로 사용할 뿐인 것이다.
이번주는 외부 기관에서 평가를 위해 나와 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맡은 분야였다. 나는 그 분야를 하지는 않지만 두루두루 관심이 많아서 웬만한 건 대답을 할 수는 있다.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것은 어차피 평가야 잘 나오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불만이 없는데, 화요일에 오전부터 실무 평가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오전에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서 휴가를 내 버렸다. 나는 그 사람을 진작에 수신차단을 걸어 버렸기 때문에 그 사실을 출근해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기도 전에 평가 대상자로 불려 가 그 사람 대신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이미 그 때문에 짜증이 난 상태로 이틀을 보냈는데 퇴근할 때 보니 내일은 서류 평가가 있는 날인데 또 급히 오전 출장을 간다고 했다. 단톡방에도 당당히 내일 출장을 간다고 올렸는데, 그 출장은 우리 부서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다 알려진 것이어서 나에게도 가자는 말이 있었지만 일이 바빠서 거절한 터였다. 그런데 그 출장을 간다고 하면 서류 평가에 또 나를 부를 텐데, 그럼 나는 그 사람의 일을 하느라 바빠서 출장을 가지 않은 셈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단톡방에 분명히 '나는 그 평가에 내일은 관여를 하지 않겠다'라고 올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또 눈치가 없는 척을 하면서 사과고 뭐고 아무 말도 올리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하면서 같은 월급을 가져가는 것도 약이 오르는데 그것보다 더 약이 오르는 건 그렇게 도와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꾸역꾸역 해 나가면서 결국은 그 사람의 일이니 결국은 자기 몫은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일이 되기만 하면 되었지, 어떻게 해서 되는지 관심이 없다.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아주 큰 소리로 거절을 해서 일이 안 되는 것이 원래 그 사람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다.

그 때문에 몇 달 동안 출근부터 퇴근까지 짜증이 난 상태로 지내왔는데 이번 주는 퇴근 후에도 그 짜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집중력이 좋아도 한 가지 생각을 며칠째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물며 하고 싶지도 않은 생각을 며칠째 하다 보니 글 쓰는 일이 그렇게 좋은데도 글을 쓸 수가 없다. 글감 노트를 보아도 생각에 잠기는 순간 짜증이 치솟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누군가에게 장기말 취급을 받는 일처럼 모욕적인 것도 없다. 어서 화풀이를 하든 부서를 옮기든 감정을 회복해서 정상적인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차피 며칠 끌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글을 써야 하고 아직 글은 충분히 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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