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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있어서 책 읽기

by 루펠 Rup L

글을 쓰게 되면서 궁금해진 것 하나는 가 글을 읽는 방식이 글쓰기에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같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 단순히 독자로 머물겠다고 생각했을 때의 독서법 그대로 책을 읽어도 글을 쓰기에 좋은가 하는 것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단순하다. 책을 펴고 읽는다.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이해가 가는 속도로 읽어가다 보면 내용에 사로잡히면서부터는 눈의 움직임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쭉쭉 읽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건 책을 읽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책에 있는 글을 읽는 방법이니 이미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굳어져 고민할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고민하는 독서법이란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아니라, 책을 고르고, 고른 책을 읽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방식은 실 방식이라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그냥 끌리는 책을 고르는 것이다. 때로는 조선 시대 학문, 책 읽는 법, 때로는 유럽의 철학사에 대한 책, 어떤 때는 그냥 소설을 읽는다. 끌리는 분야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조차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일단 끌리면 다른 분야의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게 고른 책이 읽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게 느껴질 때, 그 책만 반복해서 몇 번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책이라고는 모두 그렇게 읽어 왔기에 지금에 와서 바꾸기는 힘들다. 어떤 한 권의 책에 꽂혀 있다는 것은 어떤 노래에 꽂혀서 며칠이 걸리든 그 노래의 가사를 외우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 노래에 너무 시간을 많이 들이기 아깝다고, 더 많은 노래를 들어야 하니 그 노래는 그만 듣고 다른 노래를 듣자고 하면 새로 들으려는 노래가 머리에 들어올까?
사실 그런 고민이 생겼던 이유는 글을 쓰려면 그만큼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어딘가로 떠날 때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대비하고 그러고 나서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쪽으로 경험이 많은 사람을 팀에 끼워 넣는 것처럼 글을 쓸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글들 최대한 많이,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어떤 몇 권에 불과한 책에 사로잡혀서 그 몇 권만 반복해서 읽는다면 내 글 역시 그 범위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그것을 타파하는 방법이 단 두 가지뿐이다. 천재성을 발휘해서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글을 쓰던가, 아예 '읽은 책'이라는 범주를 넓혀 내 글의 리퍼런스를 변화시키던가. 당연히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현실적이다. 첫 번째가 비현실적이니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그쪽이 아니다. '내가 읽은 적 있는 글'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글을 읽어 가는 것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단순히 새로운 책과 글을 계속해서 읽어 가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 같은 책을 세 번 읽는 것이 두 권을 더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계속하면 되지만 허비하는 것이 맞다면 얼마나 힘들든 무조건 바꾸는 것이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의미 없는 일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책을 세 번 읽을 것을 한 번 읽고 다른 책 두 권을 읽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알 수 없다. 세 권을 읽을 시간에 그중 한 권만 세 번 읽으면 도움이 될까? 그것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내용을 다 아는 줄 알았던 책을 서너 번 더 읽다 보니 처음 보는 듯한 새로운 내용이 당연한 듯 쓰여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것들은 물론 나의 자산이 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문체나 그런 것의 문제가 아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글에서도 마지막까지 책 내용에 비추어 중요한 내용이 왜 나오지 않는지 궁금했던 것이 대여섯 번 읽고 나서야 사실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에 추세추종 투자방식에 대해 공부를 할 때였다. 투자 규모에 대해 자세하게 몇 번에 걸쳐서 설명을 해 놓은 데다 해당 책이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나름 겹치는 부분을 제외하면서 정리를 해 나갔는데, 투자 규모에 대해서는 알겠지만 매도 여부를 결정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었다. 그 책은 이미 세 번씩이나 읽어서 밑줄도 사방에 그어져 있고, 한쪽에서 설명되어 있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식으로 나타낸 것이 있다면 서로 참조할 수 있게 페이지 수도 양쪽에 표시하는 식으로 메모도 잔뜩 해가며 자세히 읽었는데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매도 시점에 대한 이야기만 어떻게 쏙 빠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여섯 번째 읽었을 때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단순히 떨어지는 추세일 때 매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추세일 가능성이 있을 때 팔아버린다며 설명한 부분을 찾게 되었다. 어차피 금융에 대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하겠지만 대략 저런 설명이 구체적으로 쓰여 있었는데 그전에는 왜 못 찾았는지는 단순히 '덜 읽었던 거겠지' 정도의 말 외에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다. 저 부분이 유일하게 반복되지 않은, 책 전체에서 단 한 번만 설명이 있던 부분이기는 했다. 아무리 자세하게 반복해서 읽어도 그 책을 다 소화하지는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내 방식대로 책을 읽어도 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책을 읽는(글자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방식은 끌리는 책을 읽고, 그러다가 다른 책이 끌리면 그 책을 읽고, 다시 읽고 싶을 때 다시 읽는 식이다. 혹은 다 읽었는데 그 책에 폭 빠져 있으면 다시 읽는다. 다 읽었는데도 계속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른 책에 사로잡힐 때까지 계속 읽는다. 공부할 때 반복해서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순히 반복해서 읽기만 한다면 절대 재미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문체나 문장만이라도 끌려야 다시 읽을 수 있다. 내용에만 집중이 되는데 그 내용이 다 아는 내용이라면 다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읽다가 멈추는 것도, 나중에 다시 이어서 읽는 것도, 다 읽고 다시 읽는 것도 내가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 책은 문장별로 끄집어내서 몸에 두르고 닳으면 다시 책 안으로 집어넣는다. 그렇게 문장들을 소비를 하는 방식, 몸에 두르는 방식은 어쨌거나 충분히 나로 인해 닳으면 그 닳은 만큼 그 문장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성숙한다. 지식이 되었건 감성이 되었건 문장을 털어서 나오는 것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읽어도 관계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에게는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 가장 잘 맞는다. 다른 사람의 글과 책뿐만 아니라 내가 내 글을 읽을 때도 내가 책을 읽는 방식으로 읽으면 된다. 내가 조심해야 할 것은 단지 글을 읽지 않게 되는 것 자체이다. 계속 읽기만 한다면 미래의 내 글들은 나를 언제나 환영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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