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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by 루펠 Rup L

지금부터 과거로 3년간을 돌아보면 딱 그러기에 알맞은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운데에 낀 시기가 1년간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기간이 2년이었다면 돌아보며 비교하기 위해 1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변화가 생기고 이제 1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전은 기간에 고려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때는 약 5년간 똑같은 출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출퇴근은 간단하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아까 이야기한 대로 1년간씩만 나열하고 비교하는 것이 좋겠다. 시골에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대중교통도 불안해졌기 때문에 약 20km 정도 되는 거리를 차로 출퇴근했다. 하지만 집 앞 외에는 신호등이 없었기 때문에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의 출퇴근은 그저 최신곡으로만 채워져 있었다고 해도 충분할 것이다. 라디오를 틀기에도 그 내용으로 보았을 때 집중이 될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 없었고, 동영상은 어차피 운전 중에는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나중에 구간단속으로 바뀐 과속 카메라가 증간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내비 앱을 켜 놓아야 했다. 결국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지만 그래도 최신곡을 틀어 놓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풍경은 논밭이 대다수였고 트럭들이 많아서 신경이 많이 쓰였을 뿐인 출퇴근길에 대해 기억이 나는 거라곤 카메라 있는 곳에서 가끔 급브레이크를 잡는 차들이 있었다는 것 정도뿐이다. 때로 2차선 도로에서 40km 정도로 가다가 추월하려고 하면 140km까지 같이 속도를 올리고 내가 포기하면 다시 40km로 달리는 미친놈들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마지막 1년 동안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시골 이야기는 그쯤에서 그만두고, 수도권에 처음 왔을 때의 이야기를 하면, 무엇보다 지하철 1호선이 있다. 철도공사 파업을 하면 무조건 급행열차부터 사람이 미어터지던 1호선이었다. 1호선도 수원 안산 방향은 탈 일이 거의 없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천 방향은, 매일같이 타도 매일같이 불만이 쌓여만 갔다. 무엇보다 급행열차는 시간표를 맞추지 않으면 탈 수가 없는데, 구로역만 지나면 시간표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하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심지어 구로행 급행은 구로역에 시간표대로 멈춘다면 이러이러한 코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아무리 철저하게 해도 개봉역에서 구로행 열차라는 말만 5분 동안 하는 통에 계획이 다 틀어져 버린 것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급행을 타지 않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상 구간이 많다 보니 폭우가 내려도 폭설이 내려도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었고, 파업 때는 일반열차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경의선을 탄다. 서울 밖으로 나가는 방향의 열차를 타기 때문에 무척 조용하고 사람도 많지 않다. 아마 인천 쪽으로도 인천에서 서울 방향이 아니라 서울에서 인천 방향이었다면 평화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머리로 이해하고 보려고 해도 이 변화가 너무 극적이어서 매번 느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한다. 어차피 좌석에 앉아서 가게 되어 있어서인지 시간표를 잘 지키지 않아도, 그래도 되는 구간이라는, 어차피 더 갈아탈 데도 없으니 내가 일찍 나와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바쁜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졌을 것이다.
오늘도 출근할 때, 익히 알고 있는 시간표대로 급히 걸어서 플랫폼에 도착했다. 하지만 전광판을 보니 이제야 두 전 역에 멈춰 있는 것이었다. 이미 익숙한 일이다. 여기에 저 정도 늦는다면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도 평소보다 10분은 더 늦을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므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5분 정도만 더 일찍 나와서 바로 전 열차를 타면 그만이다.
열차가 늦어서 잠시 서 있을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자리가 많이 있었다. 문 바로 옆의 여자와 남자 사이의 빈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습기 때문에 땀이 나 있던 상태라 등은 기대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칸 가운데 쪽에 두 개씩 있는 전광판을 보니 다음 역 이름이 깜빡거린다. 잠시 그것을 보고 다시 눈을 돌려 반대쪽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형광등을 보았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천장 에어컨 안의 팬에서 소리가 난다. 베어링이 나갔는지 털털털털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긴, 열차를 운행하는 동안에는 내내 돌고 있었을 테니 소리가 날 수도 있겠다. 싶다. 혹은 베어링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평소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사람들이 많으면 말소리에 묻히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그때에도 그것대로 들리지 않는 것이 팬 소리이니까. 그냥 선풍기 팬처럼 늘 나던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대화를 하지 않는 데다 유달리 열차가 달리는 철도와 바퀴 사이의 소리나 모터 소리도 작았던 것 같다. 칸에서 팬 소리만 유일하게 '내가 주인공이야'라는 듯 계속해서 털털거렸다.
마지막 환승역이 되어 사람들이 대거 나갔다. 희한하게 구두를 신은 사람이 오늘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비밀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돌아다녔지만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서 사고가 날 뻔한 건지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짜증을 부리듯 길게 울렸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소리는 팬에서 나는 털털털털 소리였다. 다시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했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그 열차에서 내리면서 나는 비로소 그 팬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열차에서 내리면 2층으로 나와서 개표소에서 카드를 찍고 다시 육교 같은 계단으로 내려와 길을 건너 걸어야 한다. 나는 에스컬레이터 쪽에 있는 칸에 타지 않고 내려서도 얌전히 계단으로 올라간다. 지하철이 시원해서 내리면서 덥다고 느꼈던 것인지 계단을 올라온 2층에서는 약간은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역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라리 그 털털털털 소리를 듣는 게 이 무더위와 습기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건 일상이다. 매일매일 반복할 것이다. 언제는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지 않았었나. 그나마 퇴근할 때는 아내가 차로 데리러 와 준다. 시원하지만 털털털털 거리는 팬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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