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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Aug 26. 2024

하늘

하늘은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다. 맑아서 걷기 좋은 날이 있고 흐려서 걷기 좋은 날이 있다. 보통은 눈앞에 멀리 보이는 하늘은 새파랗지만 머리 위는 구름이 끼어 있어서 햇빛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것, 또는 날이 아주 싸늘한 날 머리 위까지 파란 하늘인 것이 좋다. 하지만 하늘의 모양과 색보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뭔가 살짝 후련해지는 느낌이 있다. 모든 문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누구 말마따나 우주의 한 점이나 마찬가지인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떤 문제실은 사소한 것일 뿐이라는 말도 전혀 와닿지 않는 고민 중에도 그나마 감정적으로는 뭔가 씻겨져 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문제를 조금 더 또렷하게 보게 된다고나 할까. 나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런 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고민이 있을 때 후욱하면서 담배 연기를 시원하게 내뿜으며 느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들고 하늘만 올려다보면 되니 엄청난 가성비가 아닐 수 없다.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긴 건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며칠 동안 새파란 하늘 익숙해졌던 것이 시작이었다. 마치 가을 같은 하늘이지만 날이 더웠기에 기억이 난다. 기온이 조금 더 낮으면 걷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초등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으면 10분 정도 걸렸는데 그때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학교 건너편에 있던 5층짜리 빌라 한 채이고 나머지는 모두 2층 또는 1층짜리 건물들이었다. 그날은 그 10분도 더워서 걷기 힘들었지만 그 와중에 1학년 바른생활시간에 배웠던,
'가을 하늘, 파아란 가을 하늘'
이라는 파란 배경에 쓰여 있던 검은 글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장마가 왔다. 매일 하늘이 흐렸고 툭하면 비가 내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비가 많이 오는 날이 있었다.
그때는 방과 후에 교실 칠판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 지우고 칠판지우개를 정리만 잘하고 가기만 하면 선생님이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섯 줄짜리 도로가 칠판을 여기저기 곡선으로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위아래로 지나가기도 하면서 칠판 전체를 컬러풀하게 가득 채우는 그림을 그릴 때도 있었고 사각형이 비뚤비뚤 서로 다른 크기로 그려지다가 가득 채우기도 했다. 나중에 대학교에 가서도 심심하면 연습장에 평행선으로 그림을 그리고는 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커다란 칠판에서 이미 그 취향을 마음껏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이 임시 담임이어서 안 좋은 소리를 하기 미안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딱히 말썽을 피우지 않으니까 그냥 놔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원래 담임 선생님이 복귀하고 나서는 칠판 그림은 금지되었다.
그날이 기억에 특히 많이 남는 이유는, 그날은 점심을 먹지 않는 날이어서 열두 시가 되어 수업과 청소까지 끝났고 나는 한시쯤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하늘이 번쩍번쩍 마치 형광등을 켤 때처럼 쉬지 않고 깜빡깜빡거리더니 깜빡거리는 것이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쾅, 하는 천둥소리가 다시 쉬지 않고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비가 많이 오기 전이어서 선생님이
"조금 더 있으면 비가 완전 쏟아지겠다. 오늘은 일찍 가는 게 좋겠어."
라고 말했고 나도 순간적으로 겁을 먹어서 바로 정리를 하려고 했다. 선생님은 그걸 다 정리하고 갈 거면 그림 다 그리고 가도 되고, 지금 갈 거면 본인이 정리할 테니 그냥 바로 가방 가지고 나가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선생님의 이 은근히 엄한 느낌이어서 얼른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학교 운동장은 몇 시간째 비가 아주 조금씩 오고 있기는 했지만 중간에 멎은 적없기에 이미 진흙 웅덩이가 되어 있었다. 가장자리 콘크리트를 밟고 교문으로 나와서 길을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습관처럼 건너편 빌라 건물을 보니 하늘이 뚫린 것 같이 보였다. 모든 곳이 거무스름한데 그 위만 하얗게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구멍 같은 것의 두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는 번쩍번쩍하면서 번개가 치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검은 구름에서는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신호등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순간적으로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 상태로 밝기가 약간 다르게 변한 것 같기는 했지만 어쨌든 2초 정도 아주 밝은 상태가 유지되었던 것 같다.
'뭐지? 번개 친 건가?'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소리가 귀청을 찢듯이 땅으로 내리 꽂혔고 걷다가 무릎이 들릴 정도로 깜짝 놀란 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우산을 때리는 이 느껴질 만큼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어쩔 수 없이 길에서 물이 잘 빠지지도 않았고 빗줄기도 굵고 해서 바지와 운동화가 다 젖은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지금은 제습기를 쓰면 쉬운 일인데 그때는 운동화를 어떻게 말렸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내 방에 들어와서 스탠드를 켜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 방이 생소해서 다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물이 창틀에 튕겨서 들어왔다. '쏴아'하는 소리가 마치 목욕탕에서 탕에 뛰어들 때 물이 넘치는 소리 같았다. 2층짜리 앞집 옥상 위로도 검은 하늘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 짙은 회색 하늘에 검은색과 옅은 회색으로 얼룩이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평소보다 검어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며칠 전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느낌.
가끔 그림을 보면 하얀 캔버스에 하얀 구름과 회색 구름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본다. 도로 모양으로 색이 칠해지고 그 위에 사람의 얼굴과 옷이 칠해지는 것을 보면 사실은 하늘도 파란색이 먼저 칠해져 있고 그 위에 구름 색이 덧붙여져야 한다. 노을이 질 때의 하늘은 노을 색이 먼저 칠해지고 그다음에 구름이 칠해지지만 파란 하늘일 때는 왜인지 구름 따로 파란 하늘 따로인 경우가 많다. 사람도 피부색을 먼저 칠하고 옷을 칠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파란 하늘은 너무 익숙해서 노을보다 칠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파란 하늘을 보지 못했다면 그날, 장마전선이 한창인 곳 바로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린 시절답게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다들 반응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진지하게 들었던 친구조차 대답은,
"엄마가 그러는데 비 올 때 바닥 안 보고 다니면 맨홀 뚜껑 열린 데가 있어서 빠질 수도 있대."
였다. 그래서 지금도 하늘은 혼자 얼핏 올려다 보고 만다. 빌딩숲에서는 빌딩숲에서대로 하늘 대신 머리 위를 차지한 건물들을 보면서, 빌딩숲이 아닌 곳에서는 그나마 보이는 하늘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위를 올려다본다. 그렇지만 밤에는 별을 보려고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색깔이 있는 하늘이라서. 어두운 캔버스에 뿌려진 불빛보다는 하얀 캔버스에 칠해진 색이 더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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